두 개 남은 사랑니를 뺐다. 지난번과 달리 이 사랑니는 좀 복잡했다.
수술이라고 했지만, 한 십여분간 내 입안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부수고, 잘라내고, 쪼개고, 잡아당기고, 꿰매고..
의사와 간호사가 겁을 준 것만큼 통증이 심하진 않았지만,
얼굴 한 쪽은 사각형이 되었고, 계속 나오는 피를 삼키느라 속에서 자꾸 역한 기운이 올라온다.
하필이면 논문중간발표날 아침, 다운된 노트북이 켜지질 않는다.
설마...했는데, 하드 디스크 불량으로 데이터는 모두 날아갔고, 내 노트북은 백지 상태가 되었다.
하드도 바꿔야 하고, OS도 다시 깔아야 하고, 각종 프로그램들도 모두 다시 깔아야 한다.
다음 날 애플 서비스 센터에 노트북을 맡기고, 진단을 기다리는 동안 이상하게 차분했다.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도.
노트북 안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내게 닥친 이 급작스러운 재앙이 몰고올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 예상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버려야 할 것들, 그동안 차마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있던 것들이 이렇게 비워지는구나 싶어, 담담했다.
하나의 폴더에 모조리 담아서 당분간은 열어보지 않으려고 했던 사진들과 메일들.
지난 가을부터 앨범 자켓, 가사까지 모으고 정리하느라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은 음악들, 그리고 잘 기억나지 않는 문서들.
그러고보니, 비우는 것, 잃어버리는 것에 이렇게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구나.
논문작업의 일부는 백업을 해두었지만, 주말동안 준비한 것들은 모두 없어졌고,
덕분에 중간발표에서 (보다 복잡하게 상황이 꼬인 탓이었지만) 톡톡히 대가를 치루었다.
서러운 건, 그 때문에 논문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나는 그와 연결되어 있고, 그 고리를 끊는 것 역시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
서럽고 억울했던 것들이 쌓여 울음이 터졌는데, 1박 2일치의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비워지고, 털어내고, 그래서 가벼워질 수 있는거라고 생각하기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잉잉
비워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그 담담함이 조금 이해가 가면서도
토닥토닥할 수 밖에 없네요 ㅎㅎ
기운차리셈!!!
히히,고마워요^^ 이제서야 노트북 세팅 완료!
제작지원관련 비보 들었음. 시와도 힘내요~
주말 동안 사탕 뱉어요 ㅎ
재미있을 것 같은 논문 구경 얼른!
사탕, 일주일은 물고 있어야 된대..ㅋㅋ
대구 잘 댕겨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