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몸살

珈琲時光 2007/12/26 23:15

* 2007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논문쓰기와 *하루에 2시간씩은 논문준비하기라는 다짐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써버리겠다고 마음 먹었던 논문을 쓰지 못한 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마음에 걸리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해본다. 논문을 쓴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논문을 왜 쓰는지이고, 나머지 반의 공백을 단어와 문장들로 메꾸는 것보다 내 머릿속과 내 마음속에 공백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늘어놓는 수밖에.

* 말로 떠들기보다는 많이 읽고 많이 쓰기와 *바람흔적미술관을 풍성하게라는 약속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는 모르겠다. 사람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오늘도 또 불필요한 말들을 쏟아냈구나 후회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떠들고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풍성"하지는 못했지만, 바람흔적미술관이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무엇보다 이곳을 통해 나를 토로할 수 있어서, 그런 나를 다독여준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너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 때쯤 바람흔적미술관을 다시 살리겠다고, 호스팅과 도메인을 알아보고, 태터툴즈를 익히고, 위키를 배우고 할 때는 이 곳이 1년 동안 내게 어떤 힘이 되어줄 지 생각도 못했었다. 지난 1년여간의 흔적을 돌아보니, 나는 여기에 와서 울고, 웃고, 떠들고, 중얼대면서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마음을 다잡고, 심난하고 복잡한 일들을 되새겼구나, 싶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오전에, 남부 터미널에서 진주행 고속버스를 탔다. 무엇보다 여수 향일암에서 일출을 보자는 혜정이의 말이 솔깃했기 때문이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출렁대는 서울에서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오후 근무를 했던 전날, 겨우 바깥의 공기가 들어오는 창가의 환풍기 틈으로 올라오던 연말의 북적거림과 분주함이 한동안 잊고 있던 그리움을 간질였기 때문에, 어서 빨리 여기서 도망치자는 생각이 더 간절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어쩌면 가장 솔직한 이유인지도.

새벽 3시 반쯤 출발해 여수에 도착했을 때는 5시 반. 해가 뜨기까지 두 시간은 향일암의 법당에서 보냈다. 손발은 시려웠지만, 향냄새와 멀리서 들리는 목탁소리와 바닷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남쪽의 겨울 바람은 서울의 칼날같은 겨울 바람과 달리 참 따스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제법 모여들어서 밖이 시끄러워지고,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구름 속에서 해가 빠알간 빛을 내며 바다 위로 오를 때, 기도했다. 현재에도, 기다림에도, 바라고 원하는 것에도 지치지 않게 해달라고.
남쪽의 바람은 바다빛깔처럼 차가워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일출을 보고 와서 감기 몸살에 걸렸다. 기침이나 목감기 정도면 별탈없이 지나갔던 지난 몇 해의 겨울을 생각해보면 제법 큰 감기 몸살이다. 약을 먹고, 하루 반을 꼬박 누워있었다. 엄마가 새벽에 몇 번인가 와서 이마를 짚어보고 가고, 물을 떠먹여주고, 이불을 몇 장 더 덮어주었다. 잠이 들면, 자꾸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내 앞에 와 있었다. 뭔가 당장 결론을 내리거나,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약해지고, 작은 일에도 자꾸 눈물이 난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지나간 것에 연연하게 된다.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생각했다. 이제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들을 잘 정리해서 비워내야 할 때가 왔다고.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들, 미처 덮어두거나, 날려버리지 못한 것들, 미움, 원망, 증오, 두려움 같은 찌꺼기처럼 조금씩 남아 가끔씩 날 괴롭히는 것들.

그리고 또, 나는 다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2008년에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들을 정리해볼 참이다. 앙금처럼 남아있는 것들을 비워내는 법과 결코 지치지 않는 법, 그럴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긍정의 힘과 비판적인 낙관의 힘을 포함해서 말이다. 오늘 하루밤 푹 자고 나면 감기몸살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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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wa 2007/12/27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옷 그랬군요,
    여수에서의 일출은 정말 부러운데요.
    감기몸살 훌훌 ㅎㅎ
    괴롭히는 것들도 탈탈 ㅎㅎ

  2. BlogIcon 햄톨이 2007/12/28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를 탈탈 털어내면 또 다른 하나가 와서 슬며시 쌓이니..
    이를 어째요?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