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달 전 새벽, 어떤 개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절명의 순간을 견디는 고통에 찬 신음을 들으며 저것이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육신의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그 소리는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 집 대문에 기대어 우는가. 그렇다면 나는 영영 대문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어 그 사람이 무엇인지를 알아 갈수록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며 영향받게 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어떤 자극에 대해 그들이 보일 반응을 점점 쉽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있지만 그 감각의 실체를 나는 알 수 없다는 것. 기쁨도 고통도 허무도, 결국 나와 다른 몸을 가졌으므로 그의 유일한 육신만이 그 모든 것을 실제로 겪고 느끼고 얻는 다는 것.
그들과 공명하고 싶다. 되도록 진하게. 본디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고 느끼는 것에 무딘 나는 참으로 오랫동안 그러한 상태를 원해왔다. 그것은 내게 결핍된 요소였다. 사람의 본질이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해 늘 변할 수 없다고 자답하면서 동시에 갖는 생각은 결핍을 보하려는 의식적 움직임들, 잘못과 반성과 수정의 반복은 사람을 조금씩 나은 쪽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 "연애"라는 제목의 송혜진의 글 중 일부, 시와의 블로그에서.
#2.
언뜻 보기에 어리석고 황망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라도 그것이 마음 속에 너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면, 마침내 그것을 현실적인 일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더욱이 그런 생각이 강렬한 욕망과 결부되어 있을때는, 그것을 결국 숙명적이고 불가피하고 미리 정해진 것, 존재하지 않을 수 없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마도 욕망 이상의 어떤 것, 즉 몇몇 예감의 결합, 비상한 의지력, 상상 때문에 생긴 자기도취 따위도 한 몫을 할 것이다.
- 카를린 봉그랑, 밑줄 긋는 남자
#3.
아무 것도 버리지 않으려고 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도 내주지 않고,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또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무얼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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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이 포스팅 읽으니 왜케 절망적인 기분이 들지?
정말 위로할 자신도 없어지네...ㅠ.ㅠ
빨리 버리고 채우기를!
아웅...그랬어? 절망적이기보다는, 그냥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무거움. 뭐 그런 거였는데.... --;; 하지만 난 위로의 가능성을 믿고, 무엇보다 위로받고 싶어...ㅋㅋ
빨리 버리고 채우길!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