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3주가 되었다고 했다. (혹시 태몽을 꾸었냐고 묻는다. 아, 내가 대신 태몽을 꾸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11월이나 12월쯤 결혼을 한다고 했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소파에 올려놓은 개어놓은 빨래들 사이에 얼굴을 묻고 조금 울었다. 축하할 일이었지만, 이렇게 아득하니 멀리서 전화상으로 축하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는 것이 슬프기만 했다. 그 아득히 먼 곳에서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고, 다른 눈의 사람들과 살아갈 녀석과 내 삶이 너무 멀기만 하다는 것도 서글펐다. 앞으로도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야 할텐데, 정작 가까이 있을 때는 전화통화도 제대로 못하고, 얼굴도 자주 보지 못한 지난 몇 년이 후회스러웠다. 엄마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는 "우리 딸이 가야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 봄, 아이 둘을 데리고 8년여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또 다른 친구녀석은 담담하게 다시 과테말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남편과 재결합하고, 가게를 차릴 생각이라고 했다. 당연히 축하해야 할 일인데, 소주 한 잔, 밤샘 수다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가는구나 서운함이 밀려왔다.
모두들, 그렇게 정해진 삶을 정해진 길을 걸어간다. '이주'와 '다문화'와 미디어교육에 대한 원고 하나를 붙잡고 끙끙대다가 정작 내 주위 친구들이 하나 둘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했다. 나는 늘 이곳에 붙박혀있는데, 녀석들은 자꾸만 그게 주어진 길이라는 듯,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듯 이곳을 떠나 어딘가를 향한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만난 그 녀석들이 이십여년이 지나 나와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나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도시락을 같이 먹고, 같은 독서실을 다니고, 같은 골목과 시장길을 지나쳐 등하교를 하듯이 그렇게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남편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비슷비슷하게 평범하게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언제든 불러내면 내 앞에 앉아서 사소한 고민과 염려 따위는 별거 아니라고 내 어깨를 투닥여줄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게 주어진 포도밭과 그녀들에게 주어진 포도밭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나 둘씩 내 곁을, 이곳을 떠나간다는 것도.
내게 주어진 포도밭과 내게 주어진 달란트가 다른 사람의 것에 비해 부족하다거나 작다고 불평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가 여전히 소중하고, 즐거우며,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아주 가끔은 지금과 전혀 다른 길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기도 하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180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도 하다. 조금 지쳤기 때문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하루 늦게 당도했을 너의 생일도, 천사 남자친구와의 결혼도, 얼마 후 태어날 아가소식도 모두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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