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 다음날, 갑자기 맑던 하늘에서 눈발이 미친듯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햇살도 주춤하더니 하늘은 금세 회색빛이 되고, 저녁 어스름이 깔린 거리는 흰눈으로 뒤덮인다.
오랜만에(?) 보는 눈이다. 지난 겨울, 많은 눈이 내렸던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신기할 정도로, 지난 겨울, 지난 가을, 지난 한 해, 지난 몇 년이 가물가물하다.
결혼해서 호주로 떠났던 지연이가 몇 년만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사무실 1층에 와 있었다.
나는 늘 한 곳에 정박해 있는데, 모두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그리고 또 사라지고...
나는 그냥 느릿느릿 제속도로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그/녀들은 몇 배속의 속도로, 혹은 몇 광년의 속도로 움직여가고,
가끔씩은 나를 스쳐지나곤 한다.
얼마나 또 많은 시간이 지나야, 나는 그 스침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까?
그 순간의 막막함과 슬픔은, 멍한 서글픔은 또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모든 일이,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다는 듯이 나는 차분하고 침착하다.
가끔은 이런 내가 믿을 수 없이 의아하고, 또 가끔은 내가 이러다가 갑자기 가슴이 터져버리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걸까 앞으로의 시간들이 기대되기도 하고(뭐든 재미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 같은 혹은 그래야 한다는 강박?),
그도 아니라면 이제 이 정도쯤의 실패라면 실패, 잘못이라면 잘못, 불행이라면 불행, 불운이라면 불운은
거뜬히 무시하고 넘어가줄 수 있는 여유, 삶의 연륜이라도 쌓인건가 싶기도 하고.
버스에서 내려 차가운 밤공기 속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여서 좋다고, 다행이라고.
나뭇가지들 위로 채 녹지 못한 눈들이 쌓여있고, 꽃샘 추위 속에서도 목련은 조만간 기지개를 켤 기세다.
5층짜리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지은 십 몇 층짜리 아파트 덕에, 옛날 골목들은 꼭 영화의 세트장처럼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이 곳이어서 좋다고, 다행이라고, 편안할 수 있다고.
뭐, 설마 내 삶에 무슨 대단하고 신기한 일들이 펼쳐지겠냐만은, 그래도 두근두근 개봉박두!를 기다리는 심정.
적어도 뭔가(그래봤자 별것도 아닌 것, 부질없는 것)를 잃지 않기 위해, 뭔가를 붙들어매기 위해
조바심내며 살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 허무맹랑한 자신감, 명랑함!
(물론 가끔은 지치고, 비비꼬이고, 까칠해지고, 비틀거리고, 자학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TAG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댓글을 달아 주세요
3번째 항목! ㅎㅎㅎ
말로는 잘 떠들어대고 사람들을 웃기고 행복하게 만들게 된 것은 같은데...
두려워서 이제는 무언가 쓰고 남기지 못하는 나.
나도 용기를 내야지..흐흐
난 너의 이런 류의 글들이 참 좋더라. ^^
언니에겐 언니의 열렬한 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열심히 포스트 올리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