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어디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 한 쪽에 뭔가 잘못 돼먹은, 비뚤어지고 비뚤어진 부분이 있다.
긴 회의를 하는 날은 그 비뚤어진 마음이 강해져서 위력을 발휘한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한 쪽으로 흘려듣거나, 엄청나게 냉소적이 되거나, 무시하거나,
'나랑 무슨 상관이람' 노트북 뒤로 숨는다.
물론 그냥 회의 시간에 인터넷 서핑이나 하며 딴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비뚤어진 마음, 냉소적이 되려는 마음과 싸운다.
하지만 대부분은 '난 그냥 내가 하고싶은 것만 할거야' '당신들이 뭘 알아' 뭐 이런 식의 결론에 다다르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끝나버린다.
그래서 긴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은
집에 아주 커다랗고 푹신푹신한 침대가 있어서 그 안에 푹 파묻히고 싶다.
그런 마음들과 싸우고, 또 어쩔 수 없이 그런 나를 탓하고,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왜 그럴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피곤해진다. 그리고 왜 이렇게 못났는지, 앞으로 잘 살 수 있을지 내 자신이 걱정스럽다. 그래서 길고 긴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푹신한 곳에 날 숨겨주고, 쉬게 해주고 싶다.

"우리들은 확실히 자신의 비뚤어짐에 잘 순응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 비뚤어짐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통을 적절하게 자기 속에 자리잡게 할 수 없어서, 또 그런 것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이곳에 들어와 있는 셈이야.
이곳에 있는 한 우리들은 타인을 괴롭히지 않아도 되며, 타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자신이 '비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바로 그 점이 바깥 세계와 전혀 다른 점이야. 바깥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비뚤어짐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거든.
하지만 우리들의 이 작은 세계에서는 비뚤어짐이야말로 전제 조건이지. 우리들은 인디언이 머리에 그 부족을 나타내는 깃털을 꽂고 있듯이, 비뚤어짐을 몸에 달고 있어. 그리고 서로가 다치지 않도록 조용히 살고 있는거야."
- 상실의 시대, 나오코의 편지 중에서


바깥세계에서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가려면 이 비뚤어짐을 고치거나 숨기며 살아야 하는데,
고치는 것도, 없는 척 무시하는 것도, 숨기는 것도 어느 하나 쉽지 않다.
나도 나의 비뚤어짐을 잘 알고 있으니,
바깥 세계와 멀리 떨어진 아주 조용하고 작은 외딴, 그리고 낯선 세계에 들어가 살고 싶다,
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비뚤어진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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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menic 2008/12/02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자주 "될대로 되어버려"라는 심정이 되어버린 답니다.
    "애써 봐야 아무 소용 없어",
    "내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내가 하는 일이 틀린 일일지도 모르지",
    "누가 해도 상관없을텐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이러고 있나?"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면 될대로 되어버려!"

  2. 햄톨 2008/12/03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쩐지 회의할 때마다 꼭 노트북을 들고 오시더군요..ㅋㅋ
    훔, 정말 놓아버리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그런 마음이 드는걸까요? T.T

  3. siwa 2008/12/06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그래도 이런 글 쓸 수 있는 햄톨의 맑은 용기가 부러움 ㅋ

  4. BlogIcon 햄톨 2008/12/09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기라기보다 푸념에 가까워요.
    뭐 이렇게 푸념이라도 늘어놓다보면 비뚤어진 마음이 조금 바로잡아지지 않을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