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보고

珈琲時光 2010/03/26 02:40

오랜만에 출장을 다녀왔다. 무엇이든 핑계삼아 서울을 좀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나보다. 게다가 울산이라니... 잘 하면 부산으로 건너갈 수 있고, 바다도 볼 수 있겠구나 마음이 부푼다.

울산에서 만난 유쾌발랄한 여성분들은 정말 궁금해죽겠다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앞으로의 전망이며 꿈에 대한 물음을 던졌지만, 나는 역시나 중언부언 횡설수설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특히나 요즘은 더더욱. 하지만 거꾸로 아직도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그나마 희망적인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확실한 건, 나는 아직 무엇이 되어있지는 않다는 것,이랄까.

정말 요즘은 선배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하지만 슬픈 건 선배들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는 것.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지쳐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서 차츰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물놀이를 오래 해온, 아이가 있는 서른 두 살의 여자 분은 요즘 한창 자신의 일의 전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도 했고,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그런데도 자기 일의 전망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니, 라는 생각이 들어 생소했는데.... 이 또한 결혼을 한 여성들에 대한 선입견이자 선 긋기가 아닌가라는 반성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친구, 선배들을 만나면 온통 아이와 시댁, 남편, 살림 혹은 가정을 꾸려가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들로 넘쳐나기 때문에 나는 몇 시간씩 투명인간이 되어 조용히 웃음을 짓거나, 아이폰을 만지작거리며 웹서핑을 하거나, 혼자서 다른 생각을 하기 일쑤. 그래서 아이가 있는 그녀의 고민을 들었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녀가 말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모든게 끝나는 건 아니라고. 맞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자꾸 '결혼'은 뭔가 종착역이라는 착각을 자주 하게된다. 결혼을 하면 삶이 완성되는 것 같고, 결혼을 하면 돈을 좀 덜 벌어도 될 것 같고, 결혼을 하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질 것 같다.  (아, 내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강하게 부정하며 펄쩍 뛸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기도 하다.)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 앞에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20대 초반의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기보다는, 미적대는 내가 싫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이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된 스물네살의 민영씨는 왜 이 일을 했을까, 가장 후회된 적이 언제냐고 물었는데, 다행히도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뒤를 잘 안 돌아보고, 혹은 돌아보더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마는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러게 그동안 까칠까칠 투덜투덜 지내오긴 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다만 지금, 앞으로의 전망을 세우는 일, 다시 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이 남아있다.

오랜만에 만난 혜정이는 내달 20일 경이면 아이를 낳는다. 골격도 좋고, 덩치도 꽤 큰 사내아이란다. 혜정이랑 밤 늦도록 수다를 떨면서 혜정이가 정말 좋은 엄마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이미 엄마가 된 친구들의 얼굴도 머릿속을 스쳐갔다. 다들, 잘 하고 있겠지?

모처럼 내려간 부산은 하루 종일 회색빛에 비까지 내렸지만, 비오는 바다를 잠시나마 바라보고 왔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파도 앞에 서있었다. 나는 한참 뒤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졌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쩐지 돌아오는 길에는 -피로 때문이겠지만- 조금 서글픈 마음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되어버린, 혹은 엄마가 되어가는 준비를 하는 친구들과 나 사이의 거리감 때문인지, 괜한 자책감 때문인지, 앞날의 불투명함 때문인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삶의 고단함 때문인지.  


조급해하지 않고, 불안해 하지 않고, 천천히, 찬찬히 가자고 마음먹었지만, 그 여유가 자꾸 게으름으로 변해버린다. 그래서 우선은 주절주절 뭐라도 쓰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하지만 역시나 지금도 침대 위 --;), 책도 읽고 순간 순간을 소중히 보내자고 다시 한번 마음 먹어본다.

어째서 이번 봄은 유달리 천천히 느릿느릿 오는 것인지? 춥고도 길었던, 지리했던 겨울 탓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어서 따뜻해지면 좋겠다. 부산에서 본 개나리꽃이 이제 그만 서울에서도 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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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잉 2010/03/28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어서 따뜻해지면 좋겠어요...제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