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의 공부(장정일 지음, 랜덤하우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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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7권이라고 이름 붙였어도 좋을 <장정일의 공부>, 왜 굳이 거창하게도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로 부활했을까? 모처럼 '책읽기의 행복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 행복함을 누리지 못하는 내 삶이 누추하게 느껴졌던 주말.


"나는 일본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 한마디로 일본의 대중문화에는 지체가 없다. 한 사회의 지체란 기술과 사회현상은 앞서 가는데 법이나 제도가 그것을 뒤따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법이나 제도는 사회현상인 기술을 한 발짝 뒤늦게 따라와야지 그것을 앞서 갈 수 없긴 하다. 때문에 어떤 사회현상이 일어났을 때 전체 사회가 가진 응전력이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란 사회적 지체를 처리하는 속도로 가늠된다.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문화가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제도나 법은 속성상 새로운 사회현상을 선도하고 진단하기보다 추후 승인하는 성격이 강한 반면, 문화는 이미 추인된 사회현상에 의문을 제시할 뿐 아니라 새로운 현상을 재빨리 진단한다. 적어도 제대로 된 문화라면, 그 사회가 어물쩍거리고 있는 지체를 메워주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소설과 영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IMF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당면하고도 왜 우리 드라마는 <육남매>처럼 60년대로 되돌아가고, 왜 우리 소설은 『봉순이 언니』처럼 70년대로 되돌아가는지……
이상하게도 우리 문화는 월드컵 때의 그 묘한 박수처럼 항상 엇박이다. 바로 응전하는 게 아니라 반 박자 늦다. 그에 비해 일본 문화는 현실에 응전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오히려 현실을 상회한다. 그래서 소설ㆍ영화 할 것 없이 일본 문화의 우세 장르는 SF이고, 식민 경험으로 인한 피해 의식을 떨치지 못하는 우리들의 눈에 그들의 문화는 이면이 의심스러운 탈역사주의 책략이나 은폐된 제국주의로 비치기도 한다. […](132~133p)


하이데거의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일상인들의 삶은 구체적인 다수의 세계인 반면 철학자들은 자신만의 윤리적 이상에 사로잡혀 자신과 다른 다양한 인간들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철학자들은 설득과 의견이 조정되는 정치적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내적인 행위가 정치적 영역에서도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견의 복수성이 활동하는 공적 세계에서, 의견의 복수성 자체를 부정하는 철학적 진리는 제대로 된 정치에 접근할 수 없다. 근대의 정치가 윤리나 신학과 결별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나 아렌트는 플라톤 이래로 서양의 정치철학을 규정해 왔던 진리의 현실 가능성을 거부하고, 인간들 사이의 조정ㆍ균형 그리고 공동체의 법과 공론의 역할을 정치의 실마리로 삼았다. (275~276p)


* 윤해동의 『식민지의 회색지대』
민족주의라는 잣대만 가지고는 포착하기 어려운 '일상적 저항의 범주'가 있을 수 있듯이, 협력 역시 민족주의라는 잣대로만 볼 때는 친일이고 매국노지만 근대성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는 다른 차원을 가진다. 예를 들어 일제에 의해 설치되었던 도협의회ㆍ부회ㆍ읍회ㆍ면협의회와 같은 일련의 자문기관은 동화정책을 효율적으로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은 그렇게 주어진 공간에서 공공의 문제 제기를 통해 "공적 영역"을 확대했다. 민족주의적 시각에서는 거기에 참여한 인사들을 모조리 일제의 주구로 낙인찍지만, 윤해동의 의견은 매우 다르다: "식민 지배하에서라 하더라도 참정권의 확대 또는 지역민의 자발적 발의로 공적 영역은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부나마 공적 영역의 확대를 통하여 일상에서 문제되는 공동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고, 일정한 영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식민지 인식의 회색지대, 즉 저항과 협력이 교차하는 지점에 '정치적인 것' 공공역역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를 '식민지적 공공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식민지적 공공성은 식민 권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고, 식민 권력을 전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식민 권력과 대치선을 그릴 수는 있었고 일상에서 제기되는 공동의 문제를 통해서 정치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었다."(208p)


* 촘스키와의 대화
대학자라는 선입견과 달리 촘스키의 글은 무척 읽기 쉽다. 그의 글은 "쉬운 말로도 더 깊은 내용을 전달할 수 있"고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는 자기 원칙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글이 쉬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321p)


* 2007년, 아마겟돈
[…] 우리나라 학자들이 공부는 잘하면서 외국 이론을 수입하는 수입상이 되거나 자신의 지력만큼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은 학문을 하게 된 동기나 연구의 목적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입장을 수정ㆍ전향하거나 방법적 모색을 감행할 필요가 종종 있는 역사ㆍ사회학자의 경우 문제의식을 갖게 된 배경, 또는 전향을 하게 된 필연성이나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게 된 필연성이 설명되어야 한다.(3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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