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몇 편의 다큐멘터리

#1. 관타나모로 가는 길 The Road to Guantánamo, 2006 / 마이클 윈터바텀, 매트 화이트크로스

친구의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간 무슬림 청년 4명이 별 생각없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일이 꼬인다.
어찌 어찌 탈레반군들 사이에 들어가 살아남은 이들은 미군의 포로가 되어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된다.
그리고 2년이 넘도록 알카에다라는 거짓자백을 받아내려는 미군들의 고문에 시달린다.
실화를 영화에 옮긴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시기을 빌어온다.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와 사실을 재연한 극영화, 자료화면들로 전쟁의 현장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어처구니 없는 미국의 명분없는 전쟁, 그리고 그야말로 우연히 전쟁에 휘말리게 된 인물들의 태도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다시 한번 미국과 전쟁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가 생각하게 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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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할매꽃 2007 / 문정현

인권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
8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이토록 길고도 지루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한 번 더 보고, 함께 본 사람들과 토론도 해보고, 다시 한번 보면서 영화를 느껴지는 이 나쁜 기분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곱씹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아마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일제 시대 당시 좌익활동으로  갖은 고초와 상처를 겪어야 했던 감독 자신의 외가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굴곡많은 가족사로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연좌제를 중심축으로 설정한다.
좌익활동을 접고 자수한 후 평생을 술로 지내다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물론 외할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외할머니를 패고 자수를 권했다고 평생 그녀를 원망했다.)
경찰서에 잡혀간 외할아버지를 면회갔다가 총소리에 놀라 정신이상자가 된,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은 할아버지,
그 끔찍한 일을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했던 작은 할머니,
자수를 하기 위해 경찰서에 가던 중 아랫마을(하대)에 살던 이웃이자 우익순경에게 총살당한 외할머니의 남동생,
(외할머니의 남동생을 무자비하게 총살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감독 어머니의 친구 아버지이다.
하대 마을에선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성품이 온순한 그가 그랬을 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는 사람에게 총살당해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평생 모른 채 살아온 외할머니 남동생의 딸-감독의 이모뻘이 된다.
형의 죽음을 보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총련 활동을 한 외할머니의 또 다른 동생,
그리고 정치활동으로 가족에겐 무관심했던 아버지에게 깊은 상처를 갖고 있는 그의 자식들,
그리고 연좌제를 반대하는 감독의 어머니와 연좌제를 찬성하는 감독의 아버지, ...

몇 대에 걸친 가족사가 감독을 중심으로 펼쳐지므로, 이 복잡한 가족관계를 일일이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는 애니메이션을 사용해 할머니의 고통과 작은할아버지의 자살, 그 고통과 상처를 견디며 살아온 작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그리고 감독이 직접 마을을 찾아가고, 살아남은 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한다.
상대, 중대, 하대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상대와 중대 마을은 지식인들이 살던 마을로, 대부분이 좌익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풍동이라 불리우는 하대 마을은 주로 머슴과 하인들이 살며, 교회에 다니고, 우익활동을 하였다.
감독은 똑같이 두 마을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오래 전 기억을 끄집어내지만, 두 마을의 기억은 판이하게 다르고,
상처와 갈등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뿌리깊다. 하대 마을에서 상대 마을의 자손인 감독은 환영받지 못한다.

어쨌거나 감독은 일제시대, 해방직후, 6.25로 이어지는 한국의 근대사를 상대 마을의 자손으로서,
좌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직까지도 쉬쉬 하며 떳떳하게 살지 못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파헤쳐 들어간다.
계급, 종교, 이데올로기, 문화 수없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이었을 그 역사를 감독은 좌익/우익이라는 잣대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예를 들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인용하면서 좌익에 의해 살해된 민간인과 우익에 의해 살해된 민간인의
수를 감독은 굳이 들추어낸다.)
그 누구의 기억도 주관적이며, 그 어떤 과거의 사실도 이미 '진실'이 아니거나 모두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좌익/상대, 중대 마을/가족의 기억과 그들이 기억하는 사실들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것이 정당해 보이는 이유는, 혹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외가집이 우익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좌익활동을 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그 자손들은 몇 십년 동안, 아니 여전히 차별과 편견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다큐멘터리가 객관적이고 '진실' 혹은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가족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고 복원해야겠다고 맘먹고 출발하여 카메라를 든 순간 바라보는 역사에 대한 시선은 위험하다.
감독은 어머니에게 그 친구를 만나 당신의 아버지가 외삼촌을 총살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것을 종용한다.
감독의 어머니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이제 와서 들추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망설인다. 하지만, 감독은 그렇게 하는 것이
평생 아버지 없이 힘들게 산 이모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생각이 어떻게 가능한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건 또 다른 의미의 연좌제가 아닌가?

또 하나, 감독은 굳이 일본으로 찾아가 조총련 활동을 했던 외할머니의 남동생이 어떻게 살았는지 추적한다.
그의 아들들은 여동생을 북한으로 보내고, 평생 가족에게 냉정했던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
감독은 그런 아들들이 아버지와 화해하길 바란다. 조총련 활동과 좌익활동을 한 것과 자신의 가족을 책임지지 않고,
냉정하게 했던 것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감독은 그것 또한 역사 혹은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그의 외할머니와 작은할아버지, 이모들처럼 그 역시 역사의 희생양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뭐 그럴 수도 있다.)
다만, 그렇다면 하대 마을의 보수적이고 우익활동을 했던 사람들 역시 그렇게 인정해야 한다.

작은 할아버지가 끔찍하게 자살을 해서 돌아가셨다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와(그러나 이미 예측 가능하다),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영화는 매듭짓지만, 감독의 어머니가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엘리베이터 장면만을 비추면서
감독은 슬그머니 이 모든 문제들을 갑작스레 관객의 몫으로 돌리고 사라진다.
그러니까 감독의 기획의도대로 자신의 가족사는 기록되었고, 감독은 할머니에게 그동안 고생많이 하셨다는 인사를 남기고,
또 연좌제로 고생한 수많은 친척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카메라에 담아옴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셈이다.
하지만,  미처 기록되지 못한 채, 혹은 자신이 이야기를 꺼내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진실은? 그들의 고통스러웠던 삶은?
우익활동을 했고, 하대 마을에 살았던, 다큐멘터리스트 자손을 두지 못해 그저 단순히 '가해자'가 되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혼란스러움,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레이션이 아닌 많은 것들을 통해 전달되는 것들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 영화를 본 나의 느낌이 너무 극단적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더 보고, 곰곰이 차근차근 제대로 정리해낼 수 있어야 한다!



#3. 192-399: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 192-399: The Story About the House Living Together / 이현정, 2006

'이를테면'과 '한국에서 다큐멘터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던 감독의 이 영화를 너무 늦게 보았다. 
<192-399 :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는 몇 개월간 '더불어 사는 집'이라는 이름의 노숙인 자활공동체를 관찰한 영화이다.
정릉의 192-399번지를 점거한 이들의 역사적인 행동은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들의 한국 최초의 노숙인 점거를 과대포장하지도, 이를 빌미로 우리를 선동하지도 않는다.
도둑질도 하지 못하고, 사기도 칠 수 없어서 노숙인 된 가장 선한 사람들(2005년 12월 31일 술자리에서 나온 표현을 그래도 빌리자면)을
선동하고 싸움을 붙이는 양고문을 바라볼 때도, 박대표를 바라볼 때도, 감독은 그냥 묵묵히 카메라를 들고 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멀리 도망치지도 않고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모처럼 그 일정한 거리두기가 좋았던 다큐멘터리.

* 관련글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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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파산의 기술 / 이강현, 200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구절들과 감독의 시적인 나레이션, 그리고 파산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아니 무표정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얼굴. 새로운 시도. 그러나 조금 미심쩍은... 뭐랄까.
몽환적인 분위기와 '그러니까'라는 표현을 자주 쓰던 지적인 내레이션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과 반응들?

* 관련글 보기 1 : http://networker.jinbo.net/zine/view.php?board=networker_4&id=1818

* 관련글 보기 2 : http://www.soyio.net/wp/2006/12/11/the-description-of-bankruptcy/

* 감독인터뷰 : http://www.jiff.or.kr/webdaily/8th/0428/post/51

** 이 영화들에 관한 "풍부한" 기사와 리뷰, 참고자료들을 찾는 건 좀처럼 쉽지 않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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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햄톨이 2007/05/26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매꽃> 가족의 고통스러운 시간과 기억을 역사라는 보다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어야 했다.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한다는 것, 혹은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이 갖는 의미, 일종의 책임은 그런 것이 아닐까?
    <192-399 :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 '더불어 사는 집'이라는 공동체의 현실을 목적론적 서사에 꿰맞추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움, 내가 느끼는 것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 많은 훈련과 소통이 필요!

  2. 모리 2007/11/29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뒤늦게 <할매꽃>을 본 나의 감상과 매우 흡사해...ㅎㅎ 영화 자체가 가지는 의미, 가족사가 슬픈 역사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수많은 마을들이 있을 것이라는 감독의 말에 동의하지만 지나칠 정도의 '일방적임'이 불편했어. 해석을 좀더 관객의 몫으로 주었더라고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 여하튼 등등등의 생각이 있지만 여기에 쓰기는 어렵군요- 차 마시면서 이야기해 보아요. 나도 가족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 보고 싶어 힛

  3. 햄톨 2007/11/30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움, 그렇다면 지난 인권영화제 상영 이후 수정을 거의 안 한 것인가? 대폭 수정하려고 한동안 상영 안 한 줄 알았는데.. -_- 요즘 독립 다큐멘터리 중 실망스러운 부분이 비슷비슷한데.. 나도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이 안타깝다는 생각이...ㅎㅎ "반이다"가 새로운 작품을 보여줘!! ㅋㅋ

  4. siwa 2007/12/03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며칠 전에 서독제에서 봤다오 ㅎ
    언니 글에 많이 공감이 가용 ㅎ
    난중에 함 얘기해보자공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