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교육과 사회변화를 위한 프레이리와 호튼의 대화(아침이슬, 프락시스 옮김, 2006)
교훈이의 '강추!'로 읽게 된 프레이리와 호튼의 대화집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제목부터 맘에 들지 않지만, 현장에서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내게 몇 가지 고민거리들, 때로는 해답을 던져준다. 물론 그것이 '정답'은 아니며, 뭐든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내게 그럴 듯한 지지와 격려의 구실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루만에 읽어내린 이 책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명제가 아니라 다소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그러면서 한없이 이상적으로 낙관적인 어떤 꿈같은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 : 다른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는 동시에 자신의 호기심을 잃지 않는 법(27p)
더불어, 연초부터 느닷없이 내게 닥친 불행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심난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차라리 읽고 싶어 미칠 것 같았던 책이나 읽자 하며 담담해하는 나를 바라보다가, 그리고 프레이리와 호튼의 결코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읽다가, 그 지긋지긋한 "자기연민"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가엾고 불쌍해서 울지 않아도 된다. 울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저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연민과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호튼, 35p), 그러나 여기에는 좀더 부연된 혹은 수정된 설명이 추가되어야만 한다. 적어도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내가 보기엔 그렇다.
장정일의 공부를 읽으면서 불붙은 책읽기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그 안으로 빠져들고 싶은 기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책읽기에 대한 두 노장들의 충고 : "우리는 이론으로서의 책과 행위로서의 실천이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지, 다시 말해 실천과 이론이 어떻게 통합되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프레이리, 38p) ; 이론은 이론과 실천 그리고 반성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오는 것(호튼, 295p)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근본적인 질문 : "민중"은 누구인가? 그럼 민중을 위한 사회변화 교육을 실천했던 프레이리와 호튼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민중"인가? "민중"이란 단일하고 추상적인 하나의 집합체일까?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떻게 집단에게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121p)라고 했듯이,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에 대한 진단과 분석, 그들이 아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동시에 이들의 대화를 그들이 실천했던 역사적, 사회적, 공간적 맥락 안에서 이해하되 비판적으로, 능동적으로 '지금, 여기'로 가져올 것!
[…] 저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성인들과 일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도우면서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다른 교육활동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민중,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민중과 함께 활동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회변화에 참여하게 하자,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자는 게 제 생각이었던 거지요. 저는 이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사실 학교 교육체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역사회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지도자나 조직의 지도자들과 함께 새로운 활동방식을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지도자들이 새로운 비전을 갖고 지역사회로 돌아가 그 이상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문가를 보내서 지역사회 주민들이 그를 따르도록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민중 스스로가 자신의 잠재적 리더십을 확인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회운동과 혁명적 변화를 주도해서 구조적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운동조직들과 연대해서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운동조직들을 찾았습니다. 그렇다고 혁명가를 찾아 나섰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한된 개혁을 구조적 변혁으로 이끌 수 있는 조직 구성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지요. 그래서 가장 먼저 성인 집단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구조적 변화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미래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선별했습니다.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을 말입니다.(호튼, 232~233p)
* 체제 밖에서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255p)
체제 내 개혁은 오히려 체제를 강화시키거나, 우리가 체제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호튼)
학교체제 내부와 외부의 양 전선에서 체제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이상적
체제 내에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체제 안팎에서 함께 실천하거나 체제 내부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창안해내는 일이 필요
* 비판적 낙관주의자
-교육과 사회변화를 위한 프레이리와 호튼의 대화(아침이슬, 프락시스 옮김, 2006)
교훈이의 '강추!'로 읽게 된 프레이리와 호튼의 대화집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제목부터 맘에 들지 않지만, 현장에서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내게 몇 가지 고민거리들, 때로는 해답을 던져준다. 물론 그것이 '정답'은 아니며, 뭐든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내게 그럴 듯한 지지와 격려의 구실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루만에 읽어내린 이 책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명제가 아니라 다소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그러면서 한없이 이상적으로 낙관적인 어떤 꿈같은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 : 다른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는 동시에 자신의 호기심을 잃지 않는 법(27p)
더불어, 연초부터 느닷없이 내게 닥친 불행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심난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차라리 읽고 싶어 미칠 것 같았던 책이나 읽자 하며 담담해하는 나를 바라보다가, 그리고 프레이리와 호튼의 결코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읽다가, 그 지긋지긋한 "자기연민"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가엾고 불쌍해서 울지 않아도 된다. 울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장정일의 공부를 읽으면서 불붙은 책읽기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그 안으로 빠져들고 싶은 기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책읽기에 대한 두 노장들의 충고 : "우리는 이론으로서의 책과 행위로서의 실천이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지, 다시 말해 실천과 이론이 어떻게 통합되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프레이리, 38p) ; 이론은 이론과 실천 그리고 반성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오는 것(호튼, 295p)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근본적인 질문 : "민중"은 누구인가? 그럼 민중을 위한 사회변화 교육을 실천했던 프레이리와 호튼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민중"인가? "민중"이란 단일하고 추상적인 하나의 집합체일까?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어떻게 집단에게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121p)라고 했듯이,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에 대한 진단과 분석, 그들이 아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동시에 이들의 대화를 그들이 실천했던 역사적, 사회적, 공간적 맥락 안에서 이해하되 비판적으로, 능동적으로 '지금, 여기'로 가져올 것!
[…] 저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성인들과 일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도우면서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다른 교육활동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민중,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민중과 함께 활동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회변화에 참여하게 하자,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자는 게 제 생각이었던 거지요. 저는 이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사실 학교 교육체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역사회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지도자나 조직의 지도자들과 함께 새로운 활동방식을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지도자들이 새로운 비전을 갖고 지역사회로 돌아가 그 이상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문가를 보내서 지역사회 주민들이 그를 따르도록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민중 스스로가 자신의 잠재적 리더십을 확인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회운동과 혁명적 변화를 주도해서 구조적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운동조직들과 연대해서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운동조직들을 찾았습니다. 그렇다고 혁명가를 찾아 나섰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한된 개혁을 구조적 변혁으로 이끌 수 있는 조직 구성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지요. 그래서 가장 먼저 성인 집단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구조적 변화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미래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선별했습니다.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을 말입니다.(호튼, 232~233p)
* 체제 밖에서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255p)
체제 내 개혁은 오히려 체제를 강화시키거나, 우리가 체제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호튼)
학교체제 내부와 외부의 양 전선에서 체제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이상적
체제 내에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체제 안팎에서 함께 실천하거나 체제 내부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창안해내는 일이 필요
* 비판적 낙관주의자
TAG 프레이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