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면 차 안의 에어컨보다 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회의 막바지에 채은이 독일에서 사왔다는 와인을 내놓았다.
종이컵에 조금씩 따라 몇 잔 홀짝 들이켰는데, 알딸딸한 기운이 올라온다.

1년에 한번씩 가는 사무실 1박 2일 여름 MT로 한탄강 래프팅을 다녀왔고, 그 날 밤 삼겹살과 소주를 적당히 마시고,
2층 숙소에 올라와 커피프린스 1호점을 본 뒤,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사람들은 밤새 술을 먹고, 또 누군가는 부드러운 난동을 부리기도 했지만,
나는 갑자기 더워진 공기에 아주 잠시 뒤척였을 뿐.
다음 날 돌아오는 길에 들른 백운계곡에서는
물에 풍덩 뛰어들기도 하고,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커다란 바위 위에 벌러덩 누워있기도 하고,
맥주병을 들고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져 그저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들을 보다가 괜히 찔끔 눈물을 흘리기도.

그러니, 벌써 8월의 끝을 향해가고 있고, 사람들과 전화하며 9월의 일정을 잡고 있다.
벌써 1년. 힘들고 먹먹하게 시작했던 2007년이 벌써 9월에 접어들고, 그리고 나는.

MT 간 숙소에서 사람들의 수다와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쉬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오가는 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만화책과 소설책을 다 읽어치우면서 내내 얽매여있었다.
확신없음에 대한 두려움,
어느 편에도 쉬이 섞여들지 못하고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모습들만 쑥쑥 빨아들이는 내 자신에 대한 자신없음,
확신과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또 그만큼의 불신.

- 지난 몇 년간의 나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 그를 부정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도) 결국 남는 건,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더라 -

그래서 당분간은 귀를 막아두고 지내기로 했다.
지금은 어느 곳에 있어도,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슬프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모습들만 담아두게 되므로.

무언가 자그마한 확신이 생길 때 까지, 내 안에서 무언가를 긍정할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은 귀를 막고, 사람들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기로.

물론, 그 시간들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씩 술 한잔 하던 후배가 여자친구와 헤어져 힘들어하는데, 시간 내어 술 한 잔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그에게 해주고 싶은 건, 아니 해줄 수 있는 건, 맘 편히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한번 경험해봐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하던 그) 이별을 겪어보며 내가 느낀 건,
그저 헤어진 사람의 이야기를 쉬쉬하거나,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자꾸 끄집어내고, 자꾸 입에 담아보는 게 아닐까,라는 것.

여전히 사람들은 내가 헤어진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내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직 미련을 갖고 있다고 쉬이 단정짓거나, 불필요한 연민이나 걱정 따위는 버리라고 한다.
나는 그게 서운하더라. 그래서 후배 녀석을 만나면 자꾸 물어본다. 다 나았니? 괜찮니? 견딜만 하니?

자꾸 이야기하지 않으면, 기억을 조작하거나 미화하게 된다. 혹은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된다.
나는 정작 그게 두려운데, 그래서 뭐라도 이야기하고, 이렇게 조금씩 털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하고, 불편해한다.
그런 내가 미련하다고, 바보 같다고, 어서 정신차리라고 한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진다고 묻어두라고 한다.
가끔은 그게 더없이 서럽고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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