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많고, 그래서 마음과 머리가 버거울수록 자꾸 잠으로 도망친다.
오늘도 그렇게 밍기적 밍기적거리다가 늦게 일어나, 읽어야 할 책 대신 다른 책들을 기웃거린다.
가을비가 내려, (나도 더럭!) 겁이 나고, 곧 눈이 내릴 것만 같다.
동생이 떠나고 그녀의 방과 그녀의 책상,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가 6개월간 온전히 내 몫이 되었건만,
생각만큼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녀석이 미국에서 보낸 문자를 받아들고, 그리고 여행중인 사람들의 블로그에 올려진 사진과 여행기를 읽으며
새삼 또 한번 '떠나는 사람들'과 '남겨진 나'에 대해 생각했다.
한 곳에 붙박혀서 천천히, 쉬엄쉬엄, 진득하게 사는 게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법이라고,
분명 그만의 장점이 있을거라고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 한 때는 내 것이었던 것 같았던 하지만 지금은 내 것이 아닌 삶의 방식들에 미련이 남고,
마음이 조금 서글퍼지려는 걸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그래도 책들을 기웃거리며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졌고
음악을 듣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역시 "쉬는 날"이 좋은거다!
인디언의 女子 / 정용주 시집, 실천문학사(2007) 중에서
질아치 2
_가을비
바람 불고 날 추워져
비 그치고 난 뒤
더럭, 겁이 나는
우수수 집을 버리는 잎들
꺼멓게 젖어 흔들리는 삭정이들
차가운 물의 몸을
차갑게 받는 돌들
들에서 밭에서 몸을 빌린 곡식들
매정하게 제 갈 길로 가는 것들
더럭, 겁이 나는
가을비 그치고 난 뒤
나에게 말하는 것들
이제 바람이 차가워진다고
늙은 산당귀 제 열매를 땅에 묻는다
눈이 온다고 엉긴 구름 능선을 넘어
먼 곳으로 흩어진다
가느다란 물줄기
돌 밑으로 숨는다
오래도록 혼자라고 나무들이
가랑잎 속으로 발 들여놓는 첫겨울
오지 않는 것들은
없는 것이라고 어둠이 길을 덮는다
터미널 맨
나는 낯선 지명의 명패 아래 떨고 있는
시외버스의 엔진 소리를 사랑했다
모르는 도시의 저녁 그림자와 갈 곳 없는 먹먹함
먼 곳으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는 쓸쓸함이
자기 연민의 위안을 주기도 했다
그곳에는 기다려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목메임의 이유가 되었던 날들
발자국이 흩어져 있는 터미널
커다란 스텐레스 쓰레기통 위에 비틀린
꽁초로 빼곡한 종이컵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꽁초를 짓누르고 꽁초가 쌓인다
구겨진 종이컵에 망설임의 순간들이 포개진다
편도의 차표를 주머니에서 꺼내 힐끔 보는 사람들
차표에 찍힌 종착치를 떠올려본다
느리게 몸을 빼는 버스
구겨진 종이컵에서 토막 난 길들이 타고 있다
오늘도 그렇게 밍기적 밍기적거리다가 늦게 일어나, 읽어야 할 책 대신 다른 책들을 기웃거린다.
가을비가 내려, (나도 더럭!) 겁이 나고, 곧 눈이 내릴 것만 같다.
동생이 떠나고 그녀의 방과 그녀의 책상,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오디오가 6개월간 온전히 내 몫이 되었건만,
생각만큼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녀석이 미국에서 보낸 문자를 받아들고, 그리고 여행중인 사람들의 블로그에 올려진 사진과 여행기를 읽으며
새삼 또 한번 '떠나는 사람들'과 '남겨진 나'에 대해 생각했다.
한 곳에 붙박혀서 천천히, 쉬엄쉬엄, 진득하게 사는 게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법이라고,
분명 그만의 장점이 있을거라고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 한 때는 내 것이었던 것 같았던 하지만 지금은 내 것이 아닌 삶의 방식들에 미련이 남고,
마음이 조금 서글퍼지려는 걸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그래도 책들을 기웃거리며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졌고
음악을 듣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역시 "쉬는 날"이 좋은거다!
인디언의 女子 / 정용주 시집, 실천문학사(2007) 중에서
질아치 2
_가을비
바람 불고 날 추워져
비 그치고 난 뒤
더럭, 겁이 나는
우수수 집을 버리는 잎들
꺼멓게 젖어 흔들리는 삭정이들
차가운 물의 몸을
차갑게 받는 돌들
들에서 밭에서 몸을 빌린 곡식들
매정하게 제 갈 길로 가는 것들
더럭, 겁이 나는
가을비 그치고 난 뒤
나에게 말하는 것들
이제 바람이 차가워진다고
늙은 산당귀 제 열매를 땅에 묻는다
눈이 온다고 엉긴 구름 능선을 넘어
먼 곳으로 흩어진다
가느다란 물줄기
돌 밑으로 숨는다
오래도록 혼자라고 나무들이
가랑잎 속으로 발 들여놓는 첫겨울
오지 않는 것들은
없는 것이라고 어둠이 길을 덮는다
터미널 맨
나는 낯선 지명의 명패 아래 떨고 있는
시외버스의 엔진 소리를 사랑했다
모르는 도시의 저녁 그림자와 갈 곳 없는 먹먹함
먼 곳으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는 쓸쓸함이
자기 연민의 위안을 주기도 했다
그곳에는 기다려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목메임의 이유가 되었던 날들
발자국이 흩어져 있는 터미널
커다란 스텐레스 쓰레기통 위에 비틀린
꽁초로 빼곡한 종이컵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꽁초를 짓누르고 꽁초가 쌓인다
구겨진 종이컵에 망설임의 순간들이 포개진다
편도의 차표를 주머니에서 꺼내 힐끔 보는 사람들
차표에 찍힌 종착치를 떠올려본다
느리게 몸을 빼는 버스
구겨진 종이컵에서 토막 난 길들이 타고 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언니..
어쩌다 알고 찾아왔어욤 ㅎㅎ 괜찮은가 ^^; ?
일단 가배시광이라니 반가운걸 ㅎㅎ
헤, 덕분에 오늘 교보에 들렀다가 정용주 시집을 살짝 들추어 봤다오.
옹 글고 제 블로그 링크는 지워주길, 워낙 폐쇄적인 블로그라 ^-^
힝 종종 들려도 괜찮겠져?
서늘한 가을에 맥주와 또 수다 !
우와~ 어떻게 알고 왔을꼬? ㅋㅋ 신기하네^^ 암튼 괜찮고 말고요 ㅎㅎ
그나 저나 이 블로그는 시와 블로그보다 훨씬 왕창 더 폐쇄적인 곳이어서, 링크가 거의 나의 즐겨찾기 수준인데... 그래도???
... 움, 정 그렇다면...^^
우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제 블로그 방문자에 이 사이트 주소가 남아있더라고요.
(저만 볼 수 있는 관리페이지에 ^^)
헤 머 언니의 즐겨찾기라면 대환영이옹 ㅎㅎ
제 블로그 주소를 아는 사람은 아마 한 7-8명 될텐데
이사이트 아는 사람 수가 그 이하라면 머 ㅋㅋ
그나저나 나 여기 왕팬될거 같아~어쩌지 -.-
아하, 그랬구낭...ㅎㅎ 이 블로그를 아는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인지 파악이 잘 안되네.. 소수임은 분명한데^^;;
왕팬까지야... 기껏해야 나의 하소연과 투정, 사소한 다짐들인데요, 뭘...^^ 그치만 시와는 언제든 대환영!!! ㅎㅎ
훔..위의 Siwa님을 위해서 내가 인디언의 여자를 한 권 더 너에게 갖다주어야겠구만. ㅋㅋ
오, 그렇다면 나야 쌩유~~ 그런데 회사 사정도 좀 고려해야 되는 거 아냐? ㅋㅋ
<인디언의 여자>는 사진에서 본 시인 아저씨의 인상과는 달리 섬세하고 살짝 슬프기도 하고, 암튼 좋았다는...^^
ㅎㅎㅎ 회사 사정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비롯된 것일 뿐. 이런 책 선물과는 하등 상관없다네...^^
정용주 선생님, 몇 번 통화했는데...ㅋㅋ 어찌나 순박하고 착하고 겸손하시던지.
정말 눈물날 것 같더라고.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나...싶어서. ^^
앗 감사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