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을 탈탈 털어 모처럼 담배 한 갑을 샀다. 사람들과 저녁도 사먹었다. 일행과 헤어져 월드컵 경기장 역에 들어섰는데, 젠장 카드 지갑을 안 가져왔다. 현금도 한 푼 없고, 교통 카드도 없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바람이 씽씽 부는 밤길을 걸었다.
사실 찬 바람을 맞으며 좀 걷고 싶었다. 상암동에서 합정역까지 그다지 멀어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그냥 정말 오랜만에 무작정 걷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하필 오늘같이 추운 날 걸어가냐며 말린 것도 있고, 나도 살짝 귀찮기도 해서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아, 차라리 잘 됐구나, 생각하며 걸었다. 정말 이렇게 걸어보는 건 오랜만이다. 음악을 흥얼거리며, 사람이 없는 한적한 길을, 얼음같은 바람을 헤치며.
걷다 보면 복잡한 일들이 조금은 단순해지고, 명쾌해진다. 무겁고 버거운 일들도 별것 아닌 일이 된다. 그런데 그러기에, 내 마음의 앙금과 이끼들을 걷어내기에 월드컵 경기장과 합정역 사이의 거리는 너무 짧았다. 걷다 보니 대학생 때 학교에서 종로까지 걸어와 코아아트홀에서 보았던 <나라야마 부시코> 생각도 나고, 학교에서 마음이 허허로워질 때마다 숨어들 듯이 찾아갔던 도서관의 서가도 떠올랐다. 그 때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혼자 풀어내는 방법을 지금보다는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은 그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유지할 여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이를 먹고 팍팍한 사회생활을 하며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런 작은 마음들을 못 본 체 지나치거나 혹은 그럴 여유가 없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람들과의 수다 속에서 풀어냈던 것 같다. 그건 그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가끔씩 내가 너무 징징대거나 다른 사람에게 많이 기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어떨 때는 조금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할 마음도 쉽게 떨쳐버리거나, 술 마시고 홀딱 잊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어제는 위로받고 싶었나보다. 나는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어디 두고봐라' 하는 마음으로 잘 버틸 수 있다고 믿었는데, 정작 내 마음이 약해진 건 엉뚱한 곳에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여러가지 일들이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을 현명하게 판단하고 대처하기에는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다. 위로 받고 싶었지만, 정확히 무엇 때문에, 무엇에 대해 위로를 받고 싶은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친구에게 2천원을 빌려서 버스를 타고 오며 소리죽여 울었다. 위로 받고 싶은 마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서글퍼서 울었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 슬프다.
2월에는 걸을 일이 많을 것 같다. 아니 많이 더 많이, 더 멀리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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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환이에요.
화이팅
아, 재환! 재환도 이래 저래 요즘 수고가 많아요.
나도 종종 재환의 블로그 가서 좋은 노래도 듣고 해야겠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