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집을 했던 엄마가 어떻게 피아노를 가르칠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욕심이거나 뭔가 강요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배움이 짧았고, 자신의 교육적 선택에 늘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다만 그때 엄마는 어떤 '보통'의 기준들을 따라가고 있었으리라. 놀이 공원에 가고, 엑스포에 가는 것처럼, 어느 시기에는 어떠어떠한 것을 해야 한다는 풍문들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엑스포에 가고 박물관에 간 것이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엑스포에 보내주고, 놀이 공원에 함께 가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유년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을 뿐이지만, 무지한 눈으로 시대의 풍문들에 끄덕였을, 김밥을 싸고 관광버스에 올랐을 엄마의 피로한 얼굴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이따금 내가 회전목마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동안,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벤치에 누워 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신을 벗고 짧은 잠을 청하던 엄마의 얼굴은 도―처럼 낮고 고요했던가 그렇지 않았던가. - 김애란, '도도한 생활', <침이 고인다>(문학과 지성사, 2007)어버이날 아침, 아빠는 '엄마, 아빠의 아들 딸로 태어나주어 고맙다'고 했다.
어버이날에 태어난 나는 집을 나오며 문자로 엄마, 아빠에게 '낳아주고 길러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엄마는 답문자로 '잘 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다'고, '잘 커줘서 대견하고 고맙다'고 했다.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는 엄마, 아빠의 말이 가끔은 진짜 같기도 하다. 실은 그렇지 않았으면서, 엄마 아빠의 미안해하는 마음에 나도 그냥 익숙해진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어렵게 산 것도 같고, 마음 고생도 좀 한 것 같고, 억울했던 일도 있었던 것 같고, 서러운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늘 엄마 아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힘들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이렇게 뒷바라지해준 건 모두 엄마 덕분이다. 조금은 극성스럽게, 억척스럽게 엄마가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침이 고인다>는 잊은 듯 했던,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을 건드린다.
모처럼 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침이 고인다>를 읽으며 엄마를, 그리고 달랑 다 헤진 흑백사진 하나 뿐인 엄마의 엄마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상처들.
그와 헤어지면서 그를 꼭 안아주지 못한 것이 늘 서글펐지만,
정작 꼭 안아주고 싶었던 건 내 자신이었음을, 가엾은 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부터 쌓이고 쌓여있던 내 자신에 대한 연민과 서러움과 서글픔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모두 <침이 고인다>의 주인공들과 엄마들 때문이었지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기도.
덕분에 어딘가에 고스란히 살아있던 것들이 서럽고 서글프고 가여워졌다.
이제, 나를 한번 꼭 안아주고 토닥여주면 다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명순샘이 몇 십년도 더 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서 그게 쉽지 않구나, 생각했다. 자꾸 가여워지려는 내 자신이 부담스럽고 못나 보이기도.
그래서 상처를 주는 일도, 상처를 받는 일도, '상처'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도 두려워졌다.
고창 보리밭. 사진은 혜정!
트랙백 주소 :: http://www.hemtory.net/trackback/161
댓글을 달아 주세요
뭔가 아련하네여 ^^
어뎁네까 여기는 ㅎㅎ
언니는 부산은 안오는거?
여긴 태국 코팡안의 Chaloklum이라는 곳에 있는 한 리조트의 레스토랑. 밥먹으러 가서 찍은 사진. 앞으로도 조금씩 사진 올려볼게요. 멋진 풍경들이 많았어요...^^
부산은 못 갈 듯요. 모두들 부산에서 보겠네? 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