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역시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영화(제)들을 잊지 않고 챙겨보는 것.
무엇보다 다큐멘터리를 열심히 보고, 그에 대한 글들을 열심히 쓸 것.
좋은 영화와 별로인 영화를 구분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옳은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명확히 구별해내는 일도,
좋은 사람과 별로인 사람을 속단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진다.
쉽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면 곤란.
<잘 있어요, 이젠> 반다/장애여성공감
<잘 있어요, 이젠>은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성폭력 피해 치유 과정의 일환으로 사회적 말하기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지적장애여성 해바라기님은 공장에서 일하며 함께 일하는 아저씨들에게 성추행과 폭력 등의 피해를 입고, 재판까지 갔지만 가해자들은 무죄를 선고받고, 그녀의 이야기는 거짓말로 치부된다.
피해 당사자인 지적장애여성은 재판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무시되고, 받아들여지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과 그림일기를 통해 풀어놓는다. 공장에서 자신이 성추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공장 동료들은 입을 다물고, 가해자는 오히려 피해여성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인다.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칠해진 그녀의 그림에는 그녀가 겪었을 분노와 두려움이 담겨져 있다.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 그림과 내레이션을 통해 이루어진 이 짧은 영상을 통해 말해진다. <잘 있어요, 이젠>은 나쁜 기억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이루고, 이 사건으로 몸이 아픈 엄마에게 미안하고 속상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과정이면서,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아저씨들을 감옥에 보내고 싶었어요." "아저씨, 앞으로 그렇게 살지 마세요" 등 그 동안 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담았던 이야기들을 힘겹게 꺼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고통과 분노가 전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이 과정은 곧 사회적 말하기이기도 할 것이다.
장애인의 성, 취업의 문제, 이동권, 차별과 편견 등 장애인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 속에서 장애인, 특히 장애여성의 성 문제는 여전히 많이 가려져있다. 사회적 문제나 폭력의 심각성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해도, 당사자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을 때처럼 그 피해가 얼마나 치명적이며 가슴 아픈 일인지, 얼마나 많은 분노와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인지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경우는 없다. 사회적 말하기의 과정을 통해 뜨개질을 배우고 싶고, 앞으로는 무서운 꿈을 안 꾸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바람이 그녀 자신에게도 힘이 되고,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황보출, 그녀를 소개합니다> 지민, 2008
<전원일기>의 억척스럽고 조금은 주책맞은 일용엄니, <집으로>의 희생적이고, 묵묵한 할머니. '할머니'하면 많은 사람들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런 이미지들이 아닐까? 독립된 한 명의 여성이나 한 명의 주체이기보다는 자식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거나,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 억척스럽게 살 수밖에 없는 몇 가지의 제한된 이미지들로 그려져 온 할머니들과 달리 <황보출, 그녀를 소개합니다>의 주인공 황보출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인생을 살겠다고 말하는 당당한 여성이다. 평생 농사만 짓다가 서울에 올라와 한글을 공부하기 시작한 5년 전부터 가슴에 있는 말을 꺼낼 수 있게 된 그녀는 일기를 쓰고, 또 공책의 남은 여백에 꽃, 새, 일을 많이 해서 손마디가 굵어진 자신의 손가락을 그리면서 마음 속에 오랫동안 맺혀있던 한을 풀어내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앙금들을 풀어낸다. '가슴에 있는 말을 나는 못한다. 그래서 입이 쓰다. 참고 참고 또 참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내 말을 하겠다. 가슴에 있는 말을 하겠다.'는 그녀는 배우는 것이 즐겁다고, 앞으로도 계속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카메라를 향해 스스럼없이 더없이 환하게 웃는 그 모습만큼이나 황보출 그녀는 매력적이다.
늙고 쭈글쭈글해진 노인, 아무런 감정도 욕심도 즐거움도 없을 것 같은 할머니에게도 삶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생의 환희가 있다는 것을, 나이 든 삶도 무채색이 아니라 빨갛고 노란 빛깔이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무엇보다 젊은 주인공들을 빛내주는 조연, 보조의 역할로만 그쳤던 노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저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어떤 것들이 변화하고 어떤 것들을 배워가는지, 그리고 또 어떤 것들을 배워야 할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봄이 되어 시금치, 상추, 깻잎, 돌나물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할머니는 한글 공부를 통해 가슴 속에 있는 말을 꺼내고, 자신의 인생을 가꾸어나갈 것이다.
<그녀의 여름> 안선희, 2008, 47min
<그녀의 여름>은 1924년생인 할머니가 여든 네 번째로 맞이하는 여름을 차분하고 조용히 응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나른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고즈넉한 집안의 일상 한가운데 할머니가 있다.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동안, 할머니는 무척이나 분주하다. 시장에서 사 온 호박, 깻잎, 고추 등의 채소를 씻고,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한다. 오래된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 입고, 다림질을 하고, 이불을 꿰맨다. 할머니의 손이 더욱 분주해지는 것은 제삿날이다. 그녀와 그녀의 며느리, 그녀의 딸과 손녀, 손자 며느리는 함께 모여 제사상을 준비한다. 떡을 자르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다듬고 분주한 시간이 지나 제사상이 채워지면 남자들이 제사를 지낸다. 하루 종일 제사상을 채우느라 분주했던 그녀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짧은 순간만큼은 고요한 시간이다.
<그녀의 여름>은 지금껏 우리가 보아오던 다큐멘터리와는 사뭇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클로즈업된 이미지, 화초나 이불, 옷감, 호박이나 우엉 같은 작고 사소한 사물의 부분들에 밀착하는 카메라, 일상의 이미지 위를 흘러가는 음악과 차분하고 조용한 나레이션은 가족들이 외출한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할머니의 시간과 그녀의 일상을 물끄러미 담아낸다. 주요 인물들을 따라가는 인터뷰 중심의 다큐멘터리나 감독의 시선으로 일련의 사건을 따라가고,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손녀의 시점에서 쓰여진 내레이션은 할머니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손녀이자 감독은 할머니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녀의 주변과 일상의 시간을 통해 그녀에 대해 보여주려고 한다. 그렇게 물끄러미 할머니를 바라보고, 할머니를 보여주는 <그녀의 여름>은 그래서 그만큼 차분하게 나의 할머니와 나의 어머니,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기도 한다.
<길> 김준호, 2008, 76min
2004년 한미양국은 주한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 확장하는데 합의했고, 대추리 주민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2006년 5월 4일 주민들의 투쟁이 거세지면서 국책사업이 지연되자 정부는 마을에 공권력을 투입한다. 몇 대에 걸쳐 대추리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방효태 할아버지 역시 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함께 하며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고, 할아버지의 노동과 땀이 결실을 맺어 벼들이 익어갈수록, 정부의 빈집철거와 영농차단 조치는 거세지기만 한다. 감독은 피를 뽑고, 논에 물을 대고, 텃밭을 가꾸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촛불을 들고, 끝까지 싸움의 끈을 놓지 않는 주민들과 마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카메라를 든 채 소주 한 잔에 안주 삼아 빵을 받아먹고, 할아버지의 무거운 리어카를 뒤에서 밀기도 하는 감독은 평택미군기지확장이 대추리 주민들의 삶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무참히 짓밟고 무너뜨렸는지를 보여준다. <길>은 평택미군기지 확장이 가져올 변화들 - 평택이 최대 군사도시가 되고, 해외 침략의 전초기지가 되며 평화적 생존권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와 우려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자식은 가봐도 논은 가봐야 된다'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논에 나가 피를 뽑고, 땡볕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돌을 골라내고, 텃밭을 둘러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 할아버지의 일상과 허물어진 집들과 철조망으로 둘러쳐지는 마을, 그리고 그 땅을 지키기 위한 대추리 주민과 지킴이들의 하루 하루를 보여준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