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이 소설이 무척 '재미있다'고 했지만,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이 힘들었다. 중간 쯤 읽다가는 아예 오랫동안 한 쪽으로 치워두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쓰는 일이 기진맥진한 일인데, 읽는 일 역시 마찬가지일 것.
김훈, 칼의 노래 1 중에서 <내 작품을 말한다> 전문
이 세계가 인간에게 가하는 모멸과 치욕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밥을 먹고 숨을 쉰다는 것은, 이가 갈리는 일이지만, 마침내 협잡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나는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 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 연민과 서정을 모두 걷어낸 자리에서 겨우 드러나는 세계의 알몸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 사내의 무기는 언어가 아니라 칼이라야 마땅했다. 나는 나의 언어로 그 사내의 칼빛을 쫓아가기로 했다. 나는 나의 언어가 칼의 삼엄함과 칼의 단순성과 돌이켜지지 않는 칼의 일회성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 소설 속에서 그 사내는 충무공 이순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젊어서 『난중일기』를 읽을 때, 절망을 절망으로 긍정하면서 절망 앞에서 중언부언하지 않는 그 비극적 단순성은 철벽으로 내 마음을 가로막았다. 그때 나는 그 벽의 안쪽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나이 먹은 어느 날 그 사내에 관한 몇 줄의 글을 쓰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는 나의 문장을 그 사내의 내면의 힘과 울음에 기대었고, 거기에 비벼댔다. 나는 진양조를 버리고, 자진모리나 휘모리까지 가고 싶었다. 그러나 자주 기진해서 중모리쯤에서 주저앉았다. 내가 드러내려 했던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겨우겨우 써나갔다. 후반부에서 나는 기진맥진했다. 조금씩 쓰고 많이 잤다.
매일 매일의 불완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일은 눈물난다. 나는 이제 53살이다. 내가 소설가가 될지 뭐가 될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새로 쓰고 있는 소설을 쓰려 한다. 그 이상을 나는 말할 수 없다. 『칼의 노래』를 쓰며 새운 겨울밤들은 춥고 무서웠다.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이 힘들었다. 중간 쯤 읽다가는 아예 오랫동안 한 쪽으로 치워두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쓰는 일이 기진맥진한 일인데, 읽는 일 역시 마찬가지일 것.
김훈, 칼의 노래 1 중에서 <내 작품을 말한다> 전문
이 세계가 인간에게 가하는 모멸과 치욕은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밥을 먹고 숨을 쉰다는 것은, 이가 갈리는 일이지만, 마침내 협잡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나는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 있는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 연민과 서정을 모두 걷어낸 자리에서 겨우 드러나는 세계의 알몸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 사내의 무기는 언어가 아니라 칼이라야 마땅했다. 나는 나의 언어로 그 사내의 칼빛을 쫓아가기로 했다. 나는 나의 언어가 칼의 삼엄함과 칼의 단순성과 돌이켜지지 않는 칼의 일회성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 소설 속에서 그 사내는 충무공 이순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젊어서 『난중일기』를 읽을 때, 절망을 절망으로 긍정하면서 절망 앞에서 중언부언하지 않는 그 비극적 단순성은 철벽으로 내 마음을 가로막았다. 그때 나는 그 벽의 안쪽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나이 먹은 어느 날 그 사내에 관한 몇 줄의 글을 쓰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는 나의 문장을 그 사내의 내면의 힘과 울음에 기대었고, 거기에 비벼댔다. 나는 진양조를 버리고, 자진모리나 휘모리까지 가고 싶었다. 그러나 자주 기진해서 중모리쯤에서 주저앉았다. 내가 드러내려 했던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겨우겨우 써나갔다. 후반부에서 나는 기진맥진했다. 조금씩 쓰고 많이 잤다.
매일 매일의 불완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일은 눈물난다. 나는 이제 53살이다. 내가 소설가가 될지 뭐가 될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새로 쓰고 있는 소설을 쓰려 한다. 그 이상을 나는 말할 수 없다. 『칼의 노래』를 쓰며 새운 겨울밤들은 춥고 무서웠다.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2001년 가을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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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정말! 김훈 선생님의 소설이 재미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음. 그에 비해 산문은 참...별 것 아닌 내용으로 쓴 것들도 좋더라.
그나저나, 나도 만만치 않은데 너도 정말...
얼마만의 포스팅이여!
난 요새 다시 좀 발랄하게 업뎃하기로 했으니
너도 자주 좀 만나자.
글이라도 자주 보면 그나마 좀, 덜 봐도 본 듯해서리 ㅎㅎ
헉, 깜놀! 너무 빠른 댓글 ㅋ
응, 이제 더위도 거의 막바지인 듯 하고, 무선 인터넷 등 집안의 인터넷 환경도 개선했으니 컴터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날 듯....
하지만 그래도 "얼굴"을 자주 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