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서재에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1/07 상실의 시대
  2. 2008/08/07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3)

# 1.
연진이가 천사 남편과 함께 돌아왔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연진이의 남편은 18년만에 처음으로 중학교 때 헤어진 초등학교 친구들과 재회했다. 밤이 늦도록 그 친구들과 인경이와 나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촐한 피로연이었다.

#2.
꽁하고 지내지 않기로 마음먹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리 시원치 않다. 대신, 마인드맵 그리기를 시작했다.
조금씩 가지를 뻗어나가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세상에 닿을지도 모른다.

# 3.
10여년 만에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었다.
요즘은 내게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싶다.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뭐든 마구 주고 싶다.
다시 읽은 <상실의 시대>는 참 다르더라.
많이 울고, 띄엄띄엄 호흡을 가다듬으며 쉬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나는 와타나베이기도 하고, 나오코이기도 하고, 미도리이기도 하고, 나가사와 선배이기도 했다. 혹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는지도. 어쨌거나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기억하고, 망각하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배우고, 어른이 되어가고.


4월이 가고 5월이 왔지만 5월은 4월보다 더 가혹했다. 5월이 되자 나는 깊어가는 봄의 한 가운데에서 마음이 떨리고, 흔들리기 시작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런 떨림은 대개 해질녘에 찾아들었다. 목련 향기가 그윽하게 풍겨오는 옅은 어둠 속에서, 내 마음은 까닭없이 부풀어오르고, 떨리고, 흔들리고, 아픔으로 차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오랜 시간이 걸려 그런 느낌은 지나갔고, 그 후에 둔탁한 아픔을 남겨 놓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388쪽)

기즈키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체념으로 익혔다. 혹은 익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런 진리였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만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그 밤의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매일처럼 골똘히 그런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위스키를 몇 병씩이나 비우고, 빵을 씹고, 물통의 물을 마시고, 머리를 모래투성이로 만든 채, 배낭을 메고 초가을 해안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413쪽)




"..... 그렇지만 선뜻 그만두지 못하는 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졌다든지 이겼다든지 결론이 났으면 모르겠지만 아무 결론이 안 난 상태에서 그만뒀을 때 나중에 나이 들어서라든지 다른 데 간다든지 했을 때 어디 가서 얘기를 못하잖아. 중간에 포기하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내 인생에서 1년을 지워야 하는 거니까. 그게 계속 남아 있을 거니까. 내가 마지못해서 끌려갔다면 모르겠지만 나름 열심히 했는데 중간에 포기해 버리면 그게 계속 남아 있을거야. 그래서 결론을 빨리 봤으면 좋겠고."(72쪽)

"조합원들 때문에 그래요. 같이 했던 그 사람들을 배반할 수가 없는 거에요. 등질 수가 없는 거죠. 그 사람들이 구사대한테 맞았다고 하면, 그럴 때 내가 있을 걸 이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요. 뭐 내가 힘든데 왜 그런 생각이 드나. 하지만 그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에요. 희한하죠. 손을 못 놓는 거예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요. 그러나 몸이 못 빠져나오는 거예요. 문자 날아오잖아요. '오늘 투쟁 중요합니다. 최대한 와 주십시오.' 오늘처럼, 어머 세상에, 자리가 많이 비었네. 안 나왔으면 많이 비었겠다. 그렇게 걱정하고."(214쪽)

-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후마니타스, 2008) 중

이랜드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1년을 즈음해서 나온 책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에서 인상적이었던, 마음이 아파서 한참을 쉬었다 다시 읽었야 했던 구절. 투쟁이 뭔지도 모르고, 데모는 빨갱이들만 하는 것인 줄 알았던 그녀들이 1년이 넘는 투쟁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야말로 소박하다. 이 소박한 꿈을 위해 그토록 애쓰며 안간힘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은 도무지 꿈쩍할 것 같지가 않다.

가끔은 나만 혼자 애쓰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없이 서글퍼지는데,
책을 읽으며 모두들 애쓰고 살고 있구나 싶어서 더더욱 슬퍼졌다.


잘 지내니? 잘 살고 있니? ... 모르겠어. 그냥 흘러가는대로...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나에게 던지는 안부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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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여성노동자회 양미님이 써주신 책의 리뷰
: 이랜드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긴 『우소꿈』을 읽는 것은 나의 소박한 꿈을 응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