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김서령/실천문학사, 2007
무언가를 놓고 왔거나, 무언가로부터 달아났거나
- <무화과 잼 한 숟갈>
... 하긴 싱겁다. 지나간 시간의 대부분은 왜곡이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혹은 그 시간들이 가여울 때가 있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이 나를 자꾸 간질였다. 나는 몸을 긁었다.
-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나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만한 상황과 맞닥뜨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되도록 사과는 바라보지 않았고 적포도주를 마실만한
자리에는 가지 않았다. 그래서 과일가게를 무심히 지나쳤고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을 지키려고
큰 소리로 싸우지 않았고 부도덕한 연애에 빠질세라 몸을 사렸다.
한 번만 더 말을 아끼면 내가 이기는 것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헤픈 말은 미련을 만들고 미련은 슬픔을 만들기 마련이고,
그렇게 슬퍼지는 사람이 지는 거니까. 나는 엄마처럼 뒤에서 슬퍼지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 알레르기는 짐작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병원균은 도처에 숨어 있었다.
"이제 좀 쉬어. 피곤하지도 않아?"
나는 진심으로 엄마가 이제 그만 쉴 수 있기를 바랐다. 부닥쳐오는 것들에 끊임없이 대꾸하고 반응하고 끼어들고, 그러면서 엄마는 늙어갔다.
그래서 나는 늘 뒤편에 섰다. 대꾸하지 않았고 반응하지 않았으며 끼어들지 않았다. 보여주는 것만 보고 들려주는 것만 들었다.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으며 나는 서른세살이 되었다. 고요하고 메마른 청춘이었지만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 <사과와 적포도주가 있는 테이블>
사람들은 종종 오해를 했다. 걸핏하면 사라져버린다고.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들을 두고 혼자 가고 싶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과 영영 같이 살고 싶었으므로 그 마음을 삭히느라 타국 도시의 아파트에 세 들었고 생수와 우유를 작은 냉장고에 채워넣었다.
사람들이 걷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구분하지 못해 몇 번이나 키 큰 사람들과 부딪쳤다. 그런 후면 어김없이 나는 토라졌다.
토라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날에는 새벽녘 발코니에 나와 앉아 맥주를 마신 적도 많았다. 새벽바람은 어디든 차가웠다.
나는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먼 도시의 아파트 작은 창문을 바라볼 때마다 그들의 옆집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래서 이제 당연하다.
- <작가의 말> 중
*
"사진보다 소설이 훨씬 다정한데. 벗은 등을 따뜻하게 두드려주는 것이 소설인데."라는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김서령의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를 읽으며 들었던 느낌들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때로는 낯선 곳을 떠돌고, 아픈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하지만 질척거리거나 청승을 부리기보다는 담담한 주인공들의
등을 따스하게 두드려주는 소설, 아니 그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독자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소설.
**
모처럼 하루종일 빈둥빈둥 보낸 하루. 맑고 화창했던 아침과 달리 갑작스레 내린 비와 낮게 불던 바람.
비를 머금은 흙냄새와 나무냄새, 그리고 (얼마만인가?) 여유로운 낮잠이 좋았던 오후.
무언가를 놓고 왔거나, 무언가로부터 달아났거나
- <무화과 잼 한 숟갈>
... 하긴 싱겁다. 지나간 시간의 대부분은 왜곡이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혹은 그 시간들이 가여울 때가 있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이 나를 자꾸 간질였다. 나는 몸을 긁었다.
-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나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만한 상황과 맞닥뜨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되도록 사과는 바라보지 않았고 적포도주를 마실만한
자리에는 가지 않았다. 그래서 과일가게를 무심히 지나쳤고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을 지키려고
큰 소리로 싸우지 않았고 부도덕한 연애에 빠질세라 몸을 사렸다.
한 번만 더 말을 아끼면 내가 이기는 것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헤픈 말은 미련을 만들고 미련은 슬픔을 만들기 마련이고,
그렇게 슬퍼지는 사람이 지는 거니까. 나는 엄마처럼 뒤에서 슬퍼지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 알레르기는 짐작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병원균은 도처에 숨어 있었다.
"이제 좀 쉬어. 피곤하지도 않아?"
나는 진심으로 엄마가 이제 그만 쉴 수 있기를 바랐다. 부닥쳐오는 것들에 끊임없이 대꾸하고 반응하고 끼어들고, 그러면서 엄마는 늙어갔다.
그래서 나는 늘 뒤편에 섰다. 대꾸하지 않았고 반응하지 않았으며 끼어들지 않았다. 보여주는 것만 보고 들려주는 것만 들었다.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으며 나는 서른세살이 되었다. 고요하고 메마른 청춘이었지만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 <사과와 적포도주가 있는 테이블>
사람들은 종종 오해를 했다. 걸핏하면 사라져버린다고.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들을 두고 혼자 가고 싶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과 영영 같이 살고 싶었으므로 그 마음을 삭히느라 타국 도시의 아파트에 세 들었고 생수와 우유를 작은 냉장고에 채워넣었다.
사람들이 걷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구분하지 못해 몇 번이나 키 큰 사람들과 부딪쳤다. 그런 후면 어김없이 나는 토라졌다.
토라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날에는 새벽녘 발코니에 나와 앉아 맥주를 마신 적도 많았다. 새벽바람은 어디든 차가웠다.
나는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먼 도시의 아파트 작은 창문을 바라볼 때마다 그들의 옆집에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래서 이제 당연하다.
-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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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다 소설이 훨씬 다정한데. 벗은 등을 따뜻하게 두드려주는 것이 소설인데."라는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김서령의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를 읽으며 들었던 느낌들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때로는 낯선 곳을 떠돌고, 아픈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하지만 질척거리거나 청승을 부리기보다는 담담한 주인공들의
등을 따스하게 두드려주는 소설, 아니 그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독자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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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하루종일 빈둥빈둥 보낸 하루. 맑고 화창했던 아침과 달리 갑작스레 내린 비와 낮게 불던 바람.
비를 머금은 흙냄새와 나무냄새, 그리고 (얼마만인가?) 여유로운 낮잠이 좋았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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