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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26 사랑의 단상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김희영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0년 8월 26일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선물받았다고, 표지를 넘기면 쓰여져 있다.

며칠 전, 맥주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김샘이 요즘 <사랑의 단상>을 다시 읽고 있다고 했다.
(바르트의 말을 빌린) 김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으므로 -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하루종일 비가 오던 눅눅하고 선명하게 푸르렀던 휴일,
지하 창고에 내려가 먼지 가득 뒤집어 쓴 책더미들 속에서 조심스레 <사랑의 단상>을 찾아냈다.
오래된 책갈피, 군데 군데 모서리가 접혀있는 책장들, 2000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고, 책장을 접었을까?
김샘이 이야기하려고 했던 부분이 아마도 여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지금 읽어봐도 잘 모르겠는 이 구절들이 그 때는 어떤 의미로 내게 다가왔었는지 희미하게 표시가 되어 있다.

...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
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
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그 사람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음, 그렇다면 <봄날은 간다>에서 왜 철저하게 이영애의 자리가 비어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처럼 일 얘기 제쳐두고 사는 이야기들, 힘들게 하는 일들을 나눴는데, 김샘의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읽어야지, 아니 새로 읽어야지 마음먹고 읽은 서문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사랑에 대한 구절이 아니라, "참고문헌"에 대한 구절.

이런 사랑의 주체를 구성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출처의 조각들을 가지고 조립하였다. 어떤 것은 괴
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규칙적인 책읽기에서 온 것이고, 또 어떤 것은 꾸준한 책읽기, 우
연한 기회에 행해진 책읽기에서 온 것이다. 또 몇몇은 친구들과의 대화, 내 스스로의 삶에서 온 것도
있다.
책과 친구들에게서 빌린 것은 때로 이 텍스트의 여백에다 책 제목과 친구들 이름의 이니셜을 씀으로써
그 출처를 밝히고 있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게 주어진 주석은 권위적인 것이 아니라 우정어린
것이다. 나는 내 글을 보증하고자 인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나가는 길에 나를 매혹시키고 설득했던
혹은 한 순간이나마 이해한다는(또는 이해된다는?) 즐거움을 주었던 것들을 하나의 인사로서 상기하려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읽고 들은 것에 대한 이런 회상은 자주 불확실하고도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런저런 것이 읽혀지고 말해지고 들은 장소들의 기억(책이나 만남) 외에는 다른 그 무엇
도 아닌 담론에는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필자가 여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의 '지식'을 빌
려준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지식의 올바른 사용과는 무관한, 자신의 순진무구한 상상적인 것
만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 '기억'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고이 묻어두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잊혀지는 것이라면 문득 문득 그토록 선명하게 어떤 순간들이 살아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기억들을 끈으로 꽁꽁 묶어 마음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고, 흙과 먼지로 그것들이 눈에 띄지 않도록 잘 덮어두었다.
혹 갑자기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아가거나, 또는 알 수 없는 동요로 쌓아둔 것들이 흔들려 기억의 일부가 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면,
그럴 땐 눈을 질끈 감아버리거나, 먼 허공으로 시선을 잽싸게 돌려야 한다.
그러니 바람이 불지 않도록, 심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당분간은 살금살금 걸어야.
더 시간이 흐르면 어딘에 그 기억들을 묻어두었는지, 어떤 것들로 기억을 덮어버렸는지를 잊게 되겠지.
그러니까 결코 그 기억 자체를 잊어버리는 건 아닐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결국, 어떻든간에 누군가에 대한 혹은 어떤 시간에 대한 마음의 부분이 조금씩 작아진다는 건 적절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