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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11/03 The doors in the Wall (1)

탈락의 辨

珈琲時光 2008/10/23 18:09


[...] 우선 “한국 독립 다큐멘타리에서의 참여제작방식”은 독립 다큐멘터리에서의 참여제작방식에 관한 논문으로서는 평이한 내용이지만 그 주제의 중요성이 있고 그 언급을 실증적으로 하고 있어 상당히 필요한 논문이라고 생각되지만 전개 방식에서 정밀도가 떨어지고 1990년대 민족지영화 관련 저서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

그리하여, 우수논문에 선정되지 못했다.
이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싶으면서도 서운하기는 하다.  
그래도 2차 논의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는가,라는 것이 무슨 위로가 되겠냐마는.
전개방식의 정밀도가 떨어지고, 평이한 내용이라는 점은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어찌 되었건 누군가 나의 1년여의 고민을 읽어주고, 언급해주는 것이 어디냐.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일 때, 아니 그걸 설득하는 것이 참 고되다고 느낄 때,
나는 그저 무능하거나 혹은 영원한 '비주류'이거나 취향이 이상한 사람일 때,
그래서 자꾸 위축되고, 사방의 셔터문을 다 내리고 스스로를 감금시키고 싶을 때.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간절히 바랄 때.
그러지 말아야지, 그렇게 도망치지 말아야지,
먼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거나 손을 내밀어야지,
그래도, 그래도 그냥 혼자 저 아래로 침잠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고 수월한 일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요즘은 자꾸 아래로 아래로 침잠하고 싶다.
길고 긴 겨울잠을 잤으면 좋겠다.
사람들과의 인사도, 대화도 필요 없는 곳이면 좋겠다.

그러니까, 또 한 해의 고비.


"선생님, 눈이 무섭게 생겼어요"
"선생님, 얼굴이 토끼같이 생겼어요.
(머리 위를 가리키며) 여기에 귀 두개를 붙이면 될 거 같애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툭툭 말을 뱉어내는 산서공부방 아이들이 이쁘다.
가뭄 때문에 급작스레 낙엽으로 변한 나뭇잎들과 가을산이 좋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여기.

2008.10.22 금산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영원히 흐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생의 한 순간, 꿈 속의 한 순간´

그런 꿈을 꿀 때가 있다. 깨어나서도 한참동안이나 그 느낌과 촉감이 생생한,
그래서 하루종일 좀처럼 털어내버릴 수 없는 꿈, 언제나 제발 깨어나지 않았으면,
영원히 흘러가 버리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바로 그 순간에 무참히 깨어져 현실로 돌아오고야 마는 꿈.
아주 오랫동안, 그런 꿈속의 평화와 기쁨의 순간들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다렸던 것 같다.
꿈속에서 느꼈던 완벽한 평온함과 따스한 행복함의 순간이 언젠가 현실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다면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정말 굳건히도 믿었던 것 같다.
서서히 기다림에 지쳐 그 바람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게 되었을 때쯤,
나 역시 회색빛 도시의 고층 빌딩에서 그저 그런 일상에 파묻혀 사는 남우처럼,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 2002년 1월 <마리이야기>를 보고 나서


**
욕심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하루종일 텔레비전 앞을 어슬렁거리고, 커피를 몇 잔씩이나 마시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예전에 써놓은 글들을 뒤적거리다가.
이번에 논문을 쓰기 위해 몇 년간 읽었던 글들, 썼던 글들, 메모해두었던 것들을 다 들추어내면서, 혹은 새록새록 끄집어내면서
잊고 있었는데, 다 써먹을 데가 있구나 신기해하고 있다.
그래서 '논문을 쓴다는 것'이 그냥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얼렁뚱땅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실감하고 있다.
결국, 명쾌해지지 않았고, 불확실하고 불투명했을 뿐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였구나.
몇 년 동안 구체적으로 풀어낼 길을 찾지 못한 채 여기 저기 쌓여있었을 뿐이구나.

몇 년전부터 논문을 빨리 쓰지 않는다고, 어떤 주제를 생각하고 있고,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알려주지 않는다고
그는 몹시도 서운해 했었는데...
그 때는 나도 잘 몰랐다. 분명, 뭔가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도 잘 몰랐다.

지금은, 어떤 것으로부터 이걸 풀어낼 수 있을지 이제서야 간신히 실마리를 잡은 정도이다.
그렇게 행운처럼, 섬광처럼 내 안에 똘똘 뭉쳐있었던 것들을 바깥으로 끄집어내 줄 실마리가 되어준 것이 <이반검열>이라는 다큐멘터리이다.
그 실마리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명확한데, 이걸 끄집어내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가 막막하다.
이 막막함을 나누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정작 지금은 없구나!

그래도 내가 몇 년간 아주 조금씩, 희미하게 고민해오던 것을 쓸 수 있고, 쓰려고 한다는 것이 기쁘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일부를, 삶의 일부를 정리하고 풀어낼 수 있어서,
그냥 '논문'이 아니라, 정말 나에게 묻고, 답하고, 나와 대화하는 작업으로서의 논문쓰기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뿌듯하기도 하고, 손끝이 떨릴 정도로 초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만큼 한 편에서는 '정말 잘 쓰고 싶다' '내 스스로 실망하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자꾸만 자꾸만 욕심이 커지기도 하고.

그런데 정작 이 초조한 시간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은 자꾸 무모하고 어리석은 꿈 속으로 도망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