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6/07 "인생이란 그런 것"
  2. 2007/05/26 사랑의 단상
"인생이란 그런 것
일곱번 넘어졌다
여덟번째 일어나는 것"

- <사랑의 단상>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 중, 190p

올해는 대충 뭘 끝내고, 내년에는 어떤 일들을 도모(?)해보고,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새로 시작할지,
대충 헤아려보는데 2008년, 2009년, 2010년 등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은 이 비현실적 숫자들이 나를 압박하고,
그에 비례해 정말 내 것 같지 않은 만만치 않은 나이가 또 나를 압박한다.

글을 읽어야 하는데, 자꾸만 종이 빈 여백에 이런 저런 낙서들을 끄적이다가,
결국은 너무 집중이 안 되고 심난한 마음이 되어서 아예 책을 접고 컴퓨터 앞에 앉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일종의 내 삶의 연대기 같은 것인데(미디어연대기에서 착안), 포토샵으로 시도하다가 바로 포기하고 한글로 작성.
내가 기억하는 한 의미있는 내 삶의 순간부터(고등학교 1학년이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예상 가능한 혹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능한 시점까지 연대기순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다.

1993년, 1996년, 1997년, 1999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내 삶에 의미있는 사건들, 함께 한 사람들, 기억들, 생각들을 짧게 정리해보니 앞으로 해야 할 일들,
그리고 갖춰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들이 덩달아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암울해지거나 주눅이 들고 싶지는 않아서 굳이 내가 몇 살이 되고 있는지까지 표시하지는 않았다. -_-)

모든게 계획대로, 마음먹은대로 되지도 않지만, 또 지금까지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살아오지도 못했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조금 분명해졌고, 어떤 길로 에둘러 가야 하는지 혹은 곧장 가는지에 대한
선택과 결정도 가능하게 되고, 무엇보다 만나고 싶고, 가보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은 세상이 자꾸 자꾸 생겨나므로.

물론 이 모든 건, 한없이 작고 작은 나에게 '믿는 구석'이 있다고 믿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두 그들 덕분이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김희영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0년 8월 26일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선물받았다고, 표지를 넘기면 쓰여져 있다.

며칠 전, 맥주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김샘이 요즘 <사랑의 단상>을 다시 읽고 있다고 했다.
(바르트의 말을 빌린) 김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으므로 -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하루종일 비가 오던 눅눅하고 선명하게 푸르렀던 휴일,
지하 창고에 내려가 먼지 가득 뒤집어 쓴 책더미들 속에서 조심스레 <사랑의 단상>을 찾아냈다.
오래된 책갈피, 군데 군데 모서리가 접혀있는 책장들, 2000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고, 책장을 접었을까?
김샘이 이야기하려고 했던 부분이 아마도 여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지금 읽어봐도 잘 모르겠는 이 구절들이 그 때는 어떤 의미로 내게 다가왔었는지 희미하게 표시가 되어 있다.

...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
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
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그 사람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음, 그렇다면 <봄날은 간다>에서 왜 철저하게 이영애의 자리가 비어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처럼 일 얘기 제쳐두고 사는 이야기들, 힘들게 하는 일들을 나눴는데, 김샘의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읽어야지, 아니 새로 읽어야지 마음먹고 읽은 서문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사랑에 대한 구절이 아니라, "참고문헌"에 대한 구절.

이런 사랑의 주체를 구성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출처의 조각들을 가지고 조립하였다. 어떤 것은 괴
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규칙적인 책읽기에서 온 것이고, 또 어떤 것은 꾸준한 책읽기, 우
연한 기회에 행해진 책읽기에서 온 것이다. 또 몇몇은 친구들과의 대화, 내 스스로의 삶에서 온 것도
있다.
책과 친구들에게서 빌린 것은 때로 이 텍스트의 여백에다 책 제목과 친구들 이름의 이니셜을 씀으로써
그 출처를 밝히고 있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게 주어진 주석은 권위적인 것이 아니라 우정어린
것이다. 나는 내 글을 보증하고자 인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나가는 길에 나를 매혹시키고 설득했던
혹은 한 순간이나마 이해한다는(또는 이해된다는?) 즐거움을 주었던 것들을 하나의 인사로서 상기하려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읽고 들은 것에 대한 이런 회상은 자주 불확실하고도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런저런 것이 읽혀지고 말해지고 들은 장소들의 기억(책이나 만남) 외에는 다른 그 무엇
도 아닌 담론에는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필자가 여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의 '지식'을 빌
려준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지식의 올바른 사용과는 무관한, 자신의 순진무구한 상상적인 것
만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 '기억'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고이 묻어두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잊혀지는 것이라면 문득 문득 그토록 선명하게 어떤 순간들이 살아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기억들을 끈으로 꽁꽁 묶어 마음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고, 흙과 먼지로 그것들이 눈에 띄지 않도록 잘 덮어두었다.
혹 갑자기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아가거나, 또는 알 수 없는 동요로 쌓아둔 것들이 흔들려 기억의 일부가 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면,
그럴 땐 눈을 질끈 감아버리거나, 먼 허공으로 시선을 잽싸게 돌려야 한다.
그러니 바람이 불지 않도록, 심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당분간은 살금살금 걸어야.
더 시간이 흐르면 어딘에 그 기억들을 묻어두었는지, 어떤 것들로 기억을 덮어버렸는지를 잊게 되겠지.
그러니까 결코 그 기억 자체를 잊어버리는 건 아닐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결국, 어떻든간에 누군가에 대한 혹은 어떤 시간에 대한 마음의 부분이 조금씩 작아진다는 건 적절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