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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20 사이에서(이창재,2006)
   
드디어! <사이에서>를 보았다.
간신히, 헐레벌떡 뛰어 2분 늦게 하이퍼텍 나다에 도착해 뛰어들어간 극장 안 스크린에서는
두 여인이 바닷가 앞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사이에서>는 그녀들이 나란히 바라보는 바닷가의 수평선 위로 타이틀이 떠오르면서 그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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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소리죽여 울었다.
신내림이라는 '숙명'을 거부하고 싶지만, 몇 십년을 힘겹게 살다가 결국 그 숙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들,
8살의 나이에 귀신을 보는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신내림을 미루어달라는 굿을 지켜봐야 하는 아이의 엄마,
그리고 죽어서까지 자식들 걱정에 그 주위를 맴도는 영혼들.
신도, 인간도 아닌 그 사이에서 때로는 무서움을 견디면 살아야 하는 외로운 사람들.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채로, 혹은 잊고 있는 채로, 우리의 주변과 일상에 존재하는/떠다니는 불가해함들에 대해서.

<사이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손,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구며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손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데 뭐랄까? 나는 그 손보다, 손바닥의 손금들에서 읽혀지는 신의 의도와 불가해한 징후적 기후보다는, 신과 인간의 '사이', 합리적인 것과 불합리한 것의 '사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사이', 논리와 감성의 '사이' 등 그 무수히 많은 '사이'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 그러나 어떤 극단의 선택을 강요하거나, 강요당하면서, 혹은 관습적으로 습관적으로 그 사이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혹은 정말로 그 사이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삶의 방식? 그리고 그것의 가장 가장자리에서 끊임없이 횡당하며 갈등하고 고통받아야 하는, 그리고 결국은 어느 하나로 귀결되어져야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마도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왔던 것은 그러한 선택의 순간에서, 그 어떤 논리나 이유도 없이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이 그/녀들의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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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서>는 이해경과 황인희 두 인물을 중심으로, 무당의 삶과 그녀들이 만나고 펼치는 굿판에 우리를 데려간다. 거기서 우리는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나고, 또 억울하게 어린 나이에 떠나야만 했던 자식의 영혼을 만나고, 심술궂은 애기신을 만난다.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무아지경에 빠진 현장까지 신을 모시는 사람들 옆으로 바짝 밀착하는 카메라는 때로는 호기심의 시선으로, 때로는 반신반의의 시선으로, 그렇지만 전반적으로는 경외와 진지함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여준다.

산다는 것의 의미와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좋은 영화들과 좋은 책을 만날 때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라는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된다. 얼마나 더 치열하게 살아야, 그 삶에 좀더 가까이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나의 '평범한' 일상. 정해진 일들과 주어진 임무들로 채워져, 무엇과 무엇 '사이에' 존재할 보이지 않는 것들은 모조리 잊어버리고 마는 생활.

뭔가 더 많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막상 영화를 더듬어보니 내 울음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해지지 않는다. 좀더 생각해보기로 한다.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시간을 주무르며 나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 꾸준함보다 더 훌륭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웹콘텐츠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온라인 형식으로 전환하면 그것이 이른바 훌륭한 유씨씨가 될 수 있는 것이다."-"닥치는 대로 한다. 다만 차곡차곡 한다."
- 네트워커 이강룡 디지털 칼럼 <웹콘텐츠를 만드는 다른 방법, 시간> 중에서

@ 계간 독립영화에 실린 이현정의 <사이에서> 리뷰를 읽는다. 그리고 나의 영화보기와 글쓰기가 부끄러워진다. --;;

* 관련글
동정과 연민의 굿판, <사이에서> / 씨네21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