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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친절함에 나도 모르게 키스를 건넸는데,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시장 골목 모퉁이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창 밖으로는 검은 파도가 덥쳐오고, 닫힌 창문 사이로 모래를 가득 실은 파도가 몰려온다.
만나기로 한 그녀와의 연락은 끊겼고, 갑자기 내린 폭우와 불길한 예감들로 나는 전전긍긍이다.
그가 낯선 곳으로 이사를 했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 그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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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많은 이미지들이 꿈 속의 날 붙잡아두었는데,
정확한 것은 생각나지 않고, 그저 막막한 느낌만.
불확실함에 대해
불확실함을 견디는 법, 혹은 불확실함에 유연하게 몸을 내맡기는 법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건, 아마도 그런 불확실함들과 너그럽지 못함.
그래도 겨울바다의 바람과 찬 공기는 한결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어쩌면 1년 동안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위도의 띠뱃놀이 역시
불확실함에 대한 위로는 아닐까.
자꾸 자꾸 가벼워져서 넘실대는 파도에 쉽사리 몸을 내맡길 수 있으면 좋겠다.
단, 총총한 눈빛으로.
사진은 위도 띠뱃놀이에서. (혹여 띠뱃놀이에 대한 좀더 그럴듯한 사진을 원하신다면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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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지는가 싶더니, 요며칠은 꼭 봄날씨같다, 싶었는데.
겨울 자켓이 부담스러워 오늘은 옷도 가볍게 입고 왔는데, 갑자기 스산한 바람과 함께 빗방울.
비 덕분에 도서관에서 커피 마시며 하염없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침에 쉬엄쉬엄 느릿느릿 가는 버스에 타서 음악을 흥얼거리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내가 이제서야 드디어 삼십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물론 이미 30대이긴 하지만)
물리적인 나이가 아닌 의미에서 이제서야 내가 20대를 마무리하고, 30대로 접어들고 있구나 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거나, 괜스레 기대고 투정부리느라 게으름을 피웠던
그래서 몇 년간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충치며 사랑니 등의 치과치료, 논문쓰기, 자전거 배우기, 운동 등)
전에 없이 나의 모습(말하는 습관, 외형적인 스타일, 내가 서있는 곳, 위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변화들을 추구하거나 혹은 이미 변화한 것들을 조금씩 발견하면서도 그렇고,
논문을 쓰면서 내가 해온 것들을 돌이켜보며, 결국 모든 것은 '관계'라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요며칠 내가 그를 완전히 내다버렸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어쩌면 아직 어디 저 깊은 곳에 꽁꽁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확실히 '내다버린 것'이 맞는 듯.
오히려 '이렇게 빨리?' '이렇게 쉽게?'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죄책감과 미안함이 드는 건, 그에게도 아니고, 현재의 나에게도 아니고, 내 지나간 5년의 시간들에게이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5년의 시간 중 많은 부분은 미련과 집착, 허영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처럼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감정은, 부러움과 짜증스러움이라는 양가적인 감정.
나는 언제나 그의 속도감과 자신감이 부러웠으나,
그것이 언제나 내가 바라는 방식은 아니었으므로, 무엇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니었으므로,
내 것이 아닌 삶이었으므로.
나는 절대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고 싶기도 하고, 부럽고 갖고 싶었던.
그래서 옆에 두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면서도 미워하고, 시기하고, 충돌하고,
가끔은 그와 같이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자학하고, 혼자 괜시리 열등감에 시달리고.
국제세미나에서 꽤 오랫만에 그를 보았을 때도 들었던 건, 그런 시기심과 질투.
그와 함께 한 5년 동안, 그저 그런 그를 옆에 둔다는 것만으로, 그런 그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만으로
나는 내 자신을 위로하고, 얼토당토않은 허영심을 채우며 위안을 얻었을까?
결국 모든 것은 '그'나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구나.
어릴 때부터 나는 참 샘이 많았던 것 같다.
언니가 웅변 대회에 나가 상을 타는 것을 본 후, 혼자 몰래 웅변 연습을 해서 대회에 나갔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학원에서 수학시간에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누군가가 선생님한테 칭찬 받는 것을 본 후,
정석을 얼마나 열심히 탐독하며, 나름 철학적인 질문을 생각해내려고 애썼었는지.
요즘도 아는 사람이 우수논문심사에 당선된 것을 보고, 몹시 배아파하며 부러워하는 중. -_-
(그러고보니 누가 나보다 잘 살고, 잘 입고, 이쁘다더라 따위에는 별로 민감하지 않은데... 그건 일찌감치 어린 나이에 포기했기 때문.
공부를 잘 하거나, 글을 잘 쓴다거나 하는 건 정말 많이 부럽고, 샘난다. T.T
생각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구나.)
공부도 잘 하고, 예쁘고, 잘 사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그저 부럽다고만 생각했지, 배아플 정도는 아니었던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대강은 파악했던 것 같다.
대신 그 바닥에는 내가 갖지 못한 것, 될 수 없는 것,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꽉 차 있어서,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악착을 떨며 살았는지도.
이제는 조금, 내 자신에게 여유로워지고, 열등감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좀더 의미부여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하는 어떤 것들에 흔들리고, 힘들어하고, 기죽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대를 지나왔듯이, 이렇게 30대를 새롭게 펼치고 있듯이, 이 열등감도 이제는 흘려보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자학과 열등감 덕분에, 없이 산 덕분에 그나마 덜 '재수없는' 인간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방식 말고, 좀더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방식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는 법을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 서른살이 되었다고 느끼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걸 찾아가는 게 아닐까?
더불어 그를 내다버리면서,
누구를 만나든 다음에는 유진언니와 편안히 앉아 차마시며,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간사하게도! 그를 진작에 '내다 버리지' 못한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제 나의 열등감과 자신없음과 자학에서 나온 삐뚤어진 마음씀씀이도 같이 내다버려야지. 그러고 싶다, 정말로.
그리고 마음 한 켠 아주 조그마한 구석에, 이렇게 그를 쉽게 내다버리는 내 자신에 대한 서운함 약간.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내 마음을 나에게 설명해주고, 일단락 짓는 수밖에...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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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혼자 가지 마시라우!
좀 데리고 다니삼 ㅎ
이래놓고 시간없다고 그러지 ㅎㅎㅎ
햄선생님 보광초딩학교에서 봐요
오키오키~ 꼭 같이 가요.
하지만 회의 짬짬이 교육 짬짬이 깅, 모리와 나누는 수다 역시
여행만큼의 강력한 활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