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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8 이 아저씨의 썩소, 나를 울리는구나 (1)
<씨 인사이드 Mar adentro>(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2004)를 보았다.
죽음 역시 삶의 일부분이고, 권리라고 말하는 이 아저씨의 냉소적 미소가 나를 울렸다.
"바다의 기억에 관한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거침없이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가슴 벅찬 장면들과 더불어, 이 아저씨의 썩소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숨죽여 울었으나, 우리 모두가 노예였다고 말하는 가족들 때문인지, 웃으면서 우는 법을 익혔다고 너무도 담담하게 말하는 주인공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를 이해하고, 기꺼이 보내줄 수 있었던 친구들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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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4-50대 아줌마들과 함께 하는 미디어교육에서 인물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다.
어떤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면 좋을지 각자 아이디어를 발표하는데, 자기 자신을 찍고 싶다는 분도 몇 명 계셨다.
그 중 한 분은 현재의 자신이 너무나 불확실해서, 당장 2-3년 앞도 내다볼 수 없을만큼 너무 막막해서,
그래서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그냥 나도 모르게 다리가 휘청, 마음이 풀썩 주저앉았다.
언젠가 목인이와 나는 농담처럼, "우리의 미래는 어둡지 않아. 그저 불투명할 뿐이지." 버릇처럼 자주 되뇌이곤 했었는데,
그건 비단 20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서른을 넘어선 나에게도 그런 삶의 막막함, 자신없음, 불투명함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힘든 숙제이며,
그건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예순이 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 사실을, 아니 온전한 삶의 진리를 농담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진담보다 더 어렵고 무거운 이 진실을, 마치 농담처럼 가볍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미등록노동자인 인도네시아 친구 Harry는 '불법체류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 어디에도 자유롭게 가지 못한다.
스페인으로 3개월간 바이크 투어를 떠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지난 일요일, 부평에서 하는 교육을 마치고, 아저씨들과 또 교사들과 함께 한 술자리와 이어진 노래방에서 나를 무겁게 내리눌렀던 것은,
화기애애한 웃음과 시끌벅적한 대화, 어눌한 한국말이지만 소통하려는 따스한 노력들, 그 아래에 짙게 배어있던 사람들의 외로움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소리높여 외쳐댔는지도 모르겠다.
도영이 말처럼 "인생은 원래 (한 가치 남은 담배의) 돛대"라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보이는 외로움, 그리고 보이지 않은 거리들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그리고 나의 외로움과 우울함...

온통 마음 아프고, 온 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반응하는 것처럼 피로감이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내밀거나, 웃음을 건네는 대신
'이 모든 걸 감당하는 건 너무 어려워' 소근거리면서 나만의 공간으로 도망치는 내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하지만, 무작정 투정부리고 우울하다고, 외롭다고 징징대지는 않기로 했다.
누군가 손 내밀어주기를 기다리며 투정부리는 사람들을 보는 건,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곤혹스러운 일이므로,
그건 또 누군가에게 나의 우울함과 외로움을 전가시키는 것이므로.
그리고 모든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기도!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 어느 것도 완벽한, 정답인 길은 아니며, 그 어느 것도 실패와 두려움이 없는 길은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다면 이렇게 낙담하고 있을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런거다.
(그렇지만 뭔가 충전이 필요하다. 쉽게 지치고 도망치고 싶어하는 나를 붙잡아둘 수 있는, 혹은 좀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삶을 모색해보는 시간과 여유, 마음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두 번, 다른 언어로 다른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과 봄기운.
그리고 오랫동안 소망했던 곳들을 찾아나서는 설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