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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7 엄마와의 3박 4일 (4)
  2. 2008/05/17 침이 고인다

아침이면 커튼이 없는 창문으로 한가득 쏟아지던 햇살이 이젠 아침 7시가 넘어도 주춤하다.

엄마, 여동생과 제주도로 3박 4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언제인가 오랫만에 집에 갔더니, 엄마는 혼자 통영에 다녀왔다고 했다. 낯선 사람들과 관광버스를 타고 다녔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쉬는 날이면 좀처럼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는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저 조금의 생활비 보태는 것으로 '이 정도면 나는 할 만큼 하고 있는거야' 위안하며 살고 있는, 친구들과 잘도 놀러다니는 내 자신도 미웠다. 요즘 들어 부쩍 전화로 하소연하는 일이 잦아진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더 미루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검정색 리본으로 묶인 멋스러운 -하지만 바람 부는 제주의 올레길을 걷기엔 적합하지 않은- 소녀스러운 여행 모자를 쓰고, 들뜬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만나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와 무사히 이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나와 동생은 걱정이 잔뜩 앞섰다.

늘 공항 주변과 용두암만 맴돌고 왔던 몇 번의 출장을 제외하면 제주도는 참 오랜만이다.
하지만 뭐랄까.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은 '휴가'라기 보다는 의무감에 가까웠고, 어딘가 마음 한 쪽이 무거웠다. 엄마의 싫은 소리도 잘 참아내야 하는데, 에잇 또 엄마에게 짜증을 냈구나, 엄마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야 하는데 등등 의무감과 죄책감과 반성과 후회가 3박 4일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이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영 익숙하지가 않은가보다. 얼굴이나 목의 주름이 나올까봐 사진도 저 멀리서만 찍어야 하고, 거울을 보는 일이 싫다고 했다. 떠나는 날은 나이 드니 입가에 주름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퉁명스럽게 엄마가 평소에 관리를 안 해서 그런거지, 앞으로는 관리를 좀 하란 말이야, 라고 말했지만 가만히 엄마 얼굴을 보니 엄마의 입술 주위에는 정말 할머니들처럼 쪼글쪼글한 주름이 생겨나고 있었다. 나이들어가는 것 외에도 엄마는 엄마 자신의 삶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아주 오래 전 엄마가 세 딸들 앞에서 "나는 불행해"라고 말했을 때처럼 깔깔깔 웃었던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역시 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또 언제 오게 될지 모른다며 하나라도 더 들러보고 가겠다고 새벽부터 종종걸음을 하는 엄마를 보면서, 길가의 낯선 꽃이름 하나하나를 궁금해하고 카메라에 담는 엄마의 곁에서, 가끔은 조급하고 신경질적인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엉키고 설킨 실들을 하나 하나 풀어서 곰곰이 생각할 수 있을만큼의 여유나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가족을 만든다는 것, 아이들의 부모가 된다는 것, 사람들과 함께 살을 부대끼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 이건 너무 복잡해서, 영영 풀지 않고 이대로 내버려두면 좋겠다, 는 생각만 들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렇게 모든 걸 한쪽으로 미뤄두고 방치하는 내 자신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엄마의 좋지 않은 점만 고스란히 닮은 딸이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나도 언젠가 내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점. 모든 딸들이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 역시 엄마처럼 되지는 말아야지 생각한 적이 있지만, 그건 엄마의 삶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어떤 성격을 고스란히 닮은 내 자신을 볼 때마다 경계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경질적인 모습,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함께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성격, 걱정이 많은 모습 등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엄마는 너희들 낳고 키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니,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진 그 안 좋은 습성들에 대한 변명조차 나에게는 없는 셈이다.

관계 맺기, 특히 가족이나 연인처럼 가까운 사이에서의 관계 맺기란 특히 어렵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 생각들을 계속 하다보면 답이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버린다. 그래서 조금 외롭더라도 그런 관계들을 포기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걸까, 싶을 때가 자꾸 많아진다. 애초부터 나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여유나 너그러움 따위는 없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들도 종종 든다. 엄마와 3박 4일동안 제주 올레길을 걷고 걸으면서, 동남쪽의 해안가를 따라 해를 쫓으면서 계속 그런 의구심에 시달렸다.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이 고민을 놓지 않는 수밖에.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수밖에.

(나이들면서 어떤 고민들은 조금씩 흐려지고, 나는 조금씩 안정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멈춰 보면 그만큼의 다른/새로운 고민들이 이만큼씩 늘어나있는 것을 발견할 때의 막막함이란.) 

TV와 일을 핑계삼아 저리 치워놓았던 이런 저런 생각들에 이렇게 조금씩 시간과 마음을 쏟는 일을 늘여갔음 좋겠다. 그러다보면 고약한 성질도 조금씩 누그러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 --;; 엄마가 나이듦을 긍정하고 자신의 삶을 인정하는 시기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다음번에 엄마를 만날 때는 엄마의 이야기를 긍정하고, 엄마의 수다에 맞장구를 칠 수 있는 딸이었으면 좋겠다 .... 될까??

그나저나, 언제나 그렇듯, 여행의 여운은 짧고 일상의 빡빡함은 거침없이 밀려든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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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집을 했던 엄마가 어떻게 피아노를 가르칠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욕심이거나 뭔가 강요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배움이 짧았고, 자신의 교육적 선택에 늘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다만 그때 엄마는 어떤 '보통'의 기준들을 따라가고 있었으리라. 놀이 공원에 가고, 엑스포에 가는 것처럼, 어느 시기에는 어떠어떠한 것을 해야 한다는 풍문들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엑스포에 가고 박물관에 간 것이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엑스포에 보내주고, 놀이 공원에 함께 가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유년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을 뿐이지만, 무지한 눈으로 시대의 풍문들에 끄덕였을, 김밥을 싸고 관광버스에 올랐을 엄마의 피로한 얼굴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이따금 내가 회전목마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동안,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벤치에 누워 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신을 벗고 짧은 잠을 청하던 엄마의 얼굴은 도―처럼 낮고 고요했던가 그렇지 않았던가.
- 김애란, '도도한 생활', <침이 고인다>(문학과 지성사, 2007)

어버이날 아침, 아빠는 '엄마, 아빠의 아들 딸로 태어나주어 고맙다'고 했다.
어버이날에 태어난 나는 집을 나오며 문자로 엄마, 아빠에게 '낳아주고 길러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엄마는 답문자로 '잘 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다'고, '잘 커줘서 대견하고 고맙다'고 했다.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는 엄마, 아빠의 말이 가끔은 진짜 같기도 하다. 실은 그렇지 않았으면서, 엄마 아빠의 미안해하는 마음에 나도 그냥 익숙해진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어렵게 산 것도 같고, 마음 고생도 좀 한 것 같고, 억울했던 일도 있었던 것 같고, 서러운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늘 엄마 아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힘들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이렇게 뒷바라지해준 건 모두 엄마 덕분이다. 조금은 극성스럽게, 억척스럽게 엄마가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침이 고인다>는 잊은 듯 했던,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을 건드린다.
모처럼 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침이 고인다>를 읽으며 엄마를, 그리고 달랑 다 헤진 흑백사진 하나 뿐인 엄마의 엄마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상처들.
그와 헤어지면서 그를 꼭 안아주지 못한 것이 늘 서글펐지만,
정작 꼭 안아주고 싶었던 건 내 자신이었음을, 가엾은 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부터 쌓이고 쌓여있던 내 자신에 대한 연민과 서러움과 서글픔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모두 <침이 고인다>의 주인공들과 엄마들 때문이었지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기도.
덕분에 어딘가에 고스란히 살아있던 것들이 서럽고 서글프고 가여워졌다.
이제, 나를 한번 꼭 안아주고 토닥여주면 다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명순샘이 몇 십년도 더 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서 그게 쉽지 않구나, 생각했다. 자꾸 가여워지려는 내 자신이 부담스럽고 못나 보이기도.

그래서 상처를 주는 일도, 상처를 받는 일도, '상처'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도 두려워졌다.

고창 보리밭. 사진은 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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