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에 내릴 거라던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는 일요일 오전이 되어서야 찾아왔다.
몇 가닥으로 말아올린 머리카락을 외계인처럼 파마 열기구에 맡긴 채(고문 당하는 기분 -_-).
미장원의 2층 통유리창으로 미친듯이 쏟아붓는 빗줄기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부안에 다녀온 뒤로,
부쩍 더워진 날씨에, 어쩐지 밀려있는 일들에, 그리고 또 불쑥 움츠러든 내 자신에 치여 저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며칠동안,
착하게 살고 싶지 않은데, 착하게 혹은 착한 척 하며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나의 조건들에,
굳이 정리하면 이렇다 저렇다 할 것도 없이 명쾌히 정리되는 일을 어떻든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애쓰는 나 자신에,
그닥 무리한 일도 없는데 심하게 피곤함을 느끼는 부실한 체력에,
한 달 내내 배운 평형 동작 각각을 합쳐서 한 동작으로 해 내지 못하는 나의 겁많은 신체에,
8월이 다가오는데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나의 게으름과 정신머리에,
다른 사람에 대한 이유없는 시기와 질투심, 그리고 너그러움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나의 심성에,
어쩌지도 못할 거면서, 내 생각이 어떤 건지 설명하지도 못할 거면서 다 맘에 안 든다고 툴툴대는 나의 삐딱함에.
... 지칠대로 지쳤다.
실은 요 며칠 동안 내 자신이 정말/진심으로 '병신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고 싶은 사람도, 그리운 사람도 많았다는... T.T)
그래도 다시 엉금엉금 절망과 짜증의 늪에서 기어올라왔으니.
봄부터 진행했던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과 여성미디어교육(시네마여인네 시즌2)을 일단락했다.
작품들도 좀더 다듬어서 영화제에도 내야 하고, 앞으로는 함께 무얼 더 할지 만나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도 나눠야 하지만,
지난 몇 달간 했던 것들을 모여서 발표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웃고, 평가하고, 소감을 이야기하는 '상영회' 시간으로 일단 이번 교육은 일단락.
햇빛 쨍쨍 내리쬐는 일요일 한 낮에, 같이 가기로 했던 사람들은 급한 일정으로 함께 하지 못하고, 혼자 빔프로젝트와 카메라를 메고
부평까지 가야 했던 미얀마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 발표회.
피곤하기도 하고, 날도 덥고, 또 혼자서 무거운 걸 들고 낑낑대며 가야 한다는 생각에 심술이 잔뜩 나 있었는데,
부평역에서 기다려준 뚜라씨와 교육참여자들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밍글라바'로 인사를 건네시는 아저씨와 언제 버마어 공부할거냐고 잔소리하시는 아저씨,
말없이 내 어깨에서 장비를 내려 자신의 어깨에 짊어매는 아저씨.
부평 사원에서 함께 모여서 참여자들이 만든 영상 작품도 보고, 홈페이지도 보고, 기념사진도 찍고,
선물증정식도 하고, 스님의 인사말씀도 듣고, 소감들도 한 마디씩 하고.
덤벙덤벙 준비도 꼼꼼이 못하고, 그간 교육했던 사진이며 결과물도 제대로 챙겨오지 못한 내가 너무 부끄럽고,
계속 고맙다고 하신 교육참여자분들에게 죄송했던 시간. 감사의 선물로 받은 미얀마 산 가방과 장식물도 감동.
앞으로 잘 해야지. 큼.
지난 수요일에는 작년에 이어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들과 함께 한 <시네마여인네 시즌 2> 상영회!
작년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얼렁뚱땅 혹은 띄엄띄엄 교육에 참여하셨던 샘들과, 또 올해 새로 결합한 샘들이 함께 했던 여성미디어교육.
시간의 힘을, 그리고 같이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힘을 느껴서 너무 좋았던 시간.
마음 속에 갖고 있던 생각들, 상처, 고민, 어려움을 조금씩, 찬찬히 꺼내어 영상에 담기까지의 과정이 상영회를 통해 고스란히 보여져서,
그 과정이 작품을 보러 온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슬며시 스며들어서 기쁘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여성으로, 노동자로,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비혼여성으로, 혹은 독신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나 스스로도 고민하고, 나눌 수 있어서 따스했던 시간, 매 시간 스스럼없이 웃을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
그저 평범하게 자신의 삶을 살 뿐이지만, 버티고 싸울 용기를 놓지 않고 있는 샘들.
그리고 교육 마친 후 홍대를 어슬렁거려 찾은 술집에서 깅,
지민과 같이 비슷한 고민을 나누면서 술잔을 기울일 수 있어서 좋았던.
멋진 그녀들!!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하고 싶었던 일들, 내가 그렸던 상에 가장 가까이 갔던 교육. 사람들, 교사, 우리, 작품, 관계.
물론 아직 교육, 그 후가 남아있다. 무엇보다 '그 후'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모두 가슴에 뭐 한 두개쯤은 묻어두고 살고, 가끔은 그걸 버팀목 삼아 힘든 삶을 살아내고, 자기가 처한 현실을 바꾸어내려 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과 사람들은 관계 맺고, 힘을 주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 마음 속에 있던 걸 이렇게 꺼내어 내는 순간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묘한 울림을 준다.
그 묘한 울림이 슬프기도 하지만, 큰 위로가 된다.
우리가 모두 다르면서, 또 다르지 않다고 말을 건네는 그 묘한 울림 때문에 이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나이 먹어도 이렇게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체면 안 차리고, 주책맞게, 재미나게 지낼 수 있을까?
'교육'이라면 학을 떼는 내가 계속 하고 싶은 것.
<미디어교육과 비판적 리터러시>라는 이론서를 읽다가 덮어버렸다.
현실에는 있는데, 책에는 없는 것.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느낄 수 있는데, 글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
나는 그걸 담고 싶다.
* 미얀마 아저씨들이 봐준 내 손금에 기분이 좋아졌다. 미얀마 사람들은 왠만하면 모두 손금을 볼 줄 안다.
지식선이 길단다. 정말 오래 오래 공부하고, 글쓰며 살고 싶다. 물론 지금처럼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생생한' 공부, 살아있는 이론, 이론적 실천.
(여전히 추상적이구나. ㅡ.ㅡ 그럴려면 더 부지런해져야겠지. 마흔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므로...)
그리고 예지력. 이건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오래 전 꾸었던 꿈이 예지몽이라고 생각하면 그 꿈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무언가를 예측한다고 해서 덜 아프거나, 덜 슬프거나, 덜 상처받는 것은 아니므로, 어쩌면 아무 소용없는 일인지도.)
물론 손금에 의하면, 평생 혼자 외롭게 살다 죽을 팔자는 아니란다. 으흐흐흐, 다행이닷.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장담할 수 없지만 -.-;
가능하면 가보고 싶소 ㅎㅎ
시간 되면 와요^^ 야마가타 어땠는지도 몹시 궁금^^
상상마당에서 하는구나. ㅎㅎㅎ
와우북페스티벌 때, 울 회사 부스가 바로 상상마당 옆이었는데..ㅎㅎ
잘 지어놨더만. 이름도 좋고 시설도 괜찮고 취지도 상영영화도 괜찮고...^^
일요일 3시라.
함 들러볼까나? ㅋㅋㅋ
어케 사회보고 서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구. ㅋㅋ
ㅋㅋ 오지맛! 언니 오면 웃겨서 제대로 못해.토욜에 가자.늦잠자지 말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