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면 밀도높은 아카시아향이 코를 찌른다.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제외하면 적절한 침묵과 적당한 어둠,
소리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의 발걸음.
불광동 집에 살면서 참 고맙고, 다행이다라고 느낀 순간들은 그렇게 버스에서 내리거나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새벽에 깨어나 보았던 어스름한 하늘과 나무들.
자꾸만 심드렁해지는 나를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느라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왔다.
회의를 마치고, 일산행 버스를 탔는데 꼭 오래도록 도착하지 못할 밤버스를 타는 것처럼 낯설었다. 끝도 없는 어두움을 뚫고 당도한 신도시도 그저 낯설기만 했다. 그냥 어디든 기대고 싶은데, 버스는 자꾸만 심하게 흔들렸다. 괜히 서러웠다.
"넌 생각이 깊은 만큼 밖의 자극들이 뱅글뱅글 돌아 안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 그건 사람을 풍부하게 만들지만 어느날 갑자기 무섭도록 냉소적인 사람을 만들기도 하더라."
이사하면서 살아난 나의 스물 넷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목인의 편지를 읽으며, 아직도 내 자신을 알아가고, 그러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녀석에게 감탄하기도.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직도 유효한 목인이의 단어 하나 하나, 적확한 표현 하나 하나에 감탄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자신을 그렇게 명쾌하게 들여다보고, 해법을 알며, 무엇보다 날 정확하고 적절하게, 때로는 감탄할 정도로 표현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또 많은 것들을 망설이게 한다. 손에 닿을 것처럼, 내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내 마음을 건드리면서도 힘을 주는, 무엇보다 뭉뚱그려지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인 그런 표현들을 찾고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무엇보다 '뱅글뱅글 돌아 안으로 파고드는 글'에서 벗어나기.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던 것들이 지금은 그저 무감각하다. 한번씩 어설픈 꿈에서 깨어나 이상한 기분이 되거나, 닿을 듯 말 듯 안타까운 기분이 들 때는 소리내어 그 이름들을 불러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마음까지 불러지지는 않는다. 조금은, 그게 서운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들이 빙글빙글 돌아 결국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그냥 생각을 멈춘 상태. 냉소적이 되거나 두려움에 저만치 몇 발짝 물러서는 대신에 그냥 담담한 척 하기. 그리고 이제 그만 뒤돌아보기.
"어떤 것에 대해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판단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데자뷰의 순간이 오면 내가 왜 데자뷰라고 생각하는지 고심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판단이나 평가를 유보할 수 있다."
- 벨라 타르, 씨네 21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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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그렇겠지만 일산도 곧 정들 구석이 생길테다. 우린 아주 많았지. 거기서 퍼먹은 밥과 술이 얼만데.. 허나 하루 2시간의 출퇴근 스트레스가 가장 큰 장벽이구먼.
밥과 술을 함께 퍼먹을 수 있는 친구가 아직 일산에 없어요..^^
그럼 훨씬 더 빨리 정이 들텐데.. 아직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못하고 있지만, 곧 정이 들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