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5/17 3일 동안의 외로움 (2)
  2. 2008/05/17 침이 고인다

버스에서 내리면 밀도높은 아카시아향이 코를 찌른다.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제외하면 적절한 침묵과 적당한 어둠,
소리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의 발걸음.
불광동 집에 살면서 참 고맙고, 다행이다라고 느낀 순간들은 그렇게 버스에서 내리거나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새벽에 깨어나 보았던 어스름한 하늘과 나무들.

자꾸만 심드렁해지는 나를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느라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왔다.
회의를 마치고, 일산행 버스를 탔는데 꼭 오래도록 도착하지 못할 밤버스를 타는 것처럼 낯설었다. 끝도 없는 어두움을 뚫고 당도한 신도시도 그저 낯설기만 했다. 그냥 어디든 기대고 싶은데, 버스는 자꾸만 심하게 흔들렸다. 괜히 서러웠다.

"넌 생각이 깊은 만큼 밖의 자극들이 뱅글뱅글 돌아 안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 그건 사람을 풍부하게 만들지만 어느날 갑자기 무섭도록 냉소적인 사람을 만들기도 하더라."
이사하면서 살아난 나의 스물 넷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목인의 편지를 읽으며, 아직도 내 자신을 알아가고, 그러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녀석에게 감탄하기도.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직도 유효한 목인이의 단어 하나 하나, 적확한 표현 하나 하나에 감탄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자신을 그렇게 명쾌하게 들여다보고, 해법을 알며, 무엇보다 날 정확하고 적절하게, 때로는 감탄할 정도로 표현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또 많은 것들을 망설이게 한다. 손에 닿을 것처럼, 내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내 마음을 건드리면서도 힘을 주는, 무엇보다 뭉뚱그려지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인 그런 표현들을 찾고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무엇보다 '뱅글뱅글 돌아 안으로 파고드는 글'에서 벗어나기.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던 것들이 지금은 그저 무감각하다. 한번씩 어설픈 꿈에서 깨어나 이상한 기분이 되거나, 닿을 듯 말 듯 안타까운 기분이 들 때는 소리내어 그 이름들을 불러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마음까지 불러지지는 않는다. 조금은, 그게 서운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들이 빙글빙글 돌아 결국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그냥 생각을 멈춘 상태. 냉소적이 되거나 두려움에 저만치 몇 발짝 물러서는 대신에 그냥 담담한 척 하기. 그리고 이제 그만 뒤돌아보기.

"어떤 것에 대해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판단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데자뷰의 순간이 오면 내가 왜 데자뷰라고 생각하는지 고심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판단이나 평가를 유보할 수 있다."
- 벨라 타르, 씨네 21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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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집을 했던 엄마가 어떻게 피아노를 가르칠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욕심이거나 뭔가 강요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배움이 짧았고, 자신의 교육적 선택에 늘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다만 그때 엄마는 어떤 '보통'의 기준들을 따라가고 있었으리라. 놀이 공원에 가고, 엑스포에 가는 것처럼, 어느 시기에는 어떠어떠한 것을 해야 한다는 풍문들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엑스포에 가고 박물관에 간 것이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엑스포에 보내주고, 놀이 공원에 함께 가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유년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을 뿐이지만, 무지한 눈으로 시대의 풍문들에 끄덕였을, 김밥을 싸고 관광버스에 올랐을 엄마의 피로한 얼굴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이따금 내가 회전목마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동안,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벤치에 누워 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신을 벗고 짧은 잠을 청하던 엄마의 얼굴은 도―처럼 낮고 고요했던가 그렇지 않았던가.
- 김애란, '도도한 생활', <침이 고인다>(문학과 지성사, 2007)

어버이날 아침, 아빠는 '엄마, 아빠의 아들 딸로 태어나주어 고맙다'고 했다.
어버이날에 태어난 나는 집을 나오며 문자로 엄마, 아빠에게 '낳아주고 길러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엄마는 답문자로 '잘 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다'고, '잘 커줘서 대견하고 고맙다'고 했다.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는 엄마, 아빠의 말이 가끔은 진짜 같기도 하다. 실은 그렇지 않았으면서, 엄마 아빠의 미안해하는 마음에 나도 그냥 익숙해진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어렵게 산 것도 같고, 마음 고생도 좀 한 것 같고, 억울했던 일도 있었던 것 같고, 서러운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늘 엄마 아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힘들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이렇게 뒷바라지해준 건 모두 엄마 덕분이다. 조금은 극성스럽게, 억척스럽게 엄마가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침이 고인다>는 잊은 듯 했던,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을 건드린다.
모처럼 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침이 고인다>를 읽으며 엄마를, 그리고 달랑 다 헤진 흑백사진 하나 뿐인 엄마의 엄마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상처들.
그와 헤어지면서 그를 꼭 안아주지 못한 것이 늘 서글펐지만,
정작 꼭 안아주고 싶었던 건 내 자신이었음을, 가엾은 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부터 쌓이고 쌓여있던 내 자신에 대한 연민과 서러움과 서글픔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모두 <침이 고인다>의 주인공들과 엄마들 때문이었지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기도.
덕분에 어딘가에 고스란히 살아있던 것들이 서럽고 서글프고 가여워졌다.
이제, 나를 한번 꼭 안아주고 토닥여주면 다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명순샘이 몇 십년도 더 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서 그게 쉽지 않구나, 생각했다. 자꾸 가여워지려는 내 자신이 부담스럽고 못나 보이기도.

그래서 상처를 주는 일도, 상처를 받는 일도, '상처'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도 두려워졌다.

고창 보리밭. 사진은 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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