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08/03/30 그럼에도 불구하고 (6)
  2. 2007/10/20 가을날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 하는 게, 담배를 끊고 참는 것을 뺀다면, 별로 없이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애를 시작했구나...
너는 어떻게 지내니...

그가 다시 연애를 시작했다고 했다. 끝도 없이 눈물이 나고, 가슴이 저렸다.
나 역시 그와 연애를 시작했다가 끝낸 것 뿐인데, 조금 길고 그래서 지리하게 끝났던 연애.
처음부터 특별할 것도, 남들과 다를 것도 없는, 언제고 누군가와 시작했다가 끝낼 수 있는 연애.
바보같이 나는, 그렇게 시작과 끝이 있는 연애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조금씩 그의 자전거가 도서관 옆에 있는지 확인하게 되고,
그와 같이 걷는 것이 편해지고, 그를 보면 웃음이 나고 그런 관계가 서서히 깊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와 헤어졌을 때, '연애가 끝났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서서히 깊어진 그 관계와 마음을 갑자기 막아서야 할지 캄캄했다. 연애가 끝났다는 것이 왜 곧 그와의 전면적인 단절을 의미해야 하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길이 나지 않은 곳으로 억지로 마음을 돌려야 하는데,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너무 낯설어서, 그 낯설음이 서운하고 또 서운해서 마음 깊숙한 곳이 자꾸 아파왔다. 나의 눈물과 슬픔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나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무어라 내 자신에게 뭔가를 설명해 낼 기운도 없었다. 그저, 생각을 멈추거나 마음이 아프도록 내버려두어야 했다.  깊숙이 빨아들이는 담배 연기 정도만  그곳에 가닿는 것 같았다. 아프지만, 지금 이 순간이 내겐 참 소중하다,고 밖에는 달리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오는 토요일 오후, 자동차로 엉킨 골목 어귀에서 친구와 차 마실 곳을 찾다가 수학선생님을 만났다. 너무 오랫만이어서, 너무 반갑고 믿어지지 않아서 가슴이 두근두근, 무릎이 덜덜 떨렸다. 선생님! 선생님! 큰 소리로 두번을 외치고 나서야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왜 하나도 안 늙었어요?" 선생님의 놀란 환한 웃음과, 따스한 손길.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면 늘 나와서 안아주던, 근처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시켜 건네주던, 서점에서 고르고 고른 책들을 재미있을거라며 건네주던 그 손길. 열 일곱이었던 나는 서른 둘이 되고, 서른 살이었던 선생님은 마흔 다섯 살이 되었는데, 마치 그동안의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선생님이 거기 서 계셔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아픈 마음이 벅차오르는. 독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잠시 동안만 아이들에게 산수를 가르치겠다고 했던 서른 살의 선생님이 여전히 아이들과 정석을 붙잡고 씨름하는, 그래서 지치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나이들어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마음 아팠지만.

"우리 혜미는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던져놓던 질문은 언제나 내게 큰 숙제였는데, 그가 준 시집과 인문학 책들은 힘들 때 찾아보는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는데, 내가 커서 뭐가 되면 좋겠다고, 뭘 하면 정말 잘 할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아준 유일한 스승인데, 그 질문의 답이 내게서 조금 명확해질 때 쯤, 선생님은 자신의 오랜 꿈을 접어버렸다. 선생님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들은 모조리 수학 문제집과 정석, 수험서들로 대체되었다. 그가 떠나야 할 곳으로 떠나지 못하고, 너무 많은 잎을 매단 채 이곳에 안주했을 때, 그래서 늘 정신없고, 바쁘기만 한 그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몇 년이나 지났는지 가물가물하다. 나는 그 때의 나로부터 얼마나 떠나왔을까? 나 역시 너무 많은 잎을 매단 채 같은 곳에 머물러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예전처럼 선생님이 이곳에 있어서, 똘망똘망하고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쓰다듬고, 나는 또 개구장이처럼 선생님을 놀리고, 선생님의 접힌 옷깃을 바로세워줄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밖에는. 뭐라 달리...

다시 연애를 시작한 그의 소식에 힘들어하는 나와
우연히 마주친 수학선생님과
아이 둘을 데리고 홀로 떠나온 녀석과
낯선 나라에서 혼자 엉엉 울고 있는 나의 친구 녀석 때문에, 자꾸만 아프다. 정말 아프다.
아픈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아픈건지, 벅찬건지, 아픈 곳이 더 아픈건지 모르겠다. 
아픈 마음이 내 몸의 몇 배로 부풀어올라 숨을 쉬기가 힘들다.

이제 내가 알던, 내가 익숙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그와 언젠가 마주친다면
수학 선생님에게 그랬듯 환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프지만, 만나서 반갑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봄비, 옛골목길, 아주 아주 깊숙이 빨아들이고 싶던 담배 한 가치, 산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기억, 관계, 시간, 용기, 그리고 진.심.

가을날

珈琲時光 2007/10/20 16:34
가을날

                                                          이성복

자잘한 잎새 사이로 엷은 하늘색 꽃들이 바람에 불릴 때 그는 말했다.
[가을인데 꽃이 피었네요. 이 꽃들이 왜 지금 피는지 모르겠어요. 가령
내게도 흰 줄무늬 여름옷이 있는데, 그걸 봄에 입을 때는 모르겠는데
가을에 입으면 좀 이상해요. 기울기를 이 꽃들은 모르는가봐요. 아니면
알면서도 그냥 피는지도 몰라요.]

헤어지면서 나는 대답했다.
[글쎄요. 나도 그래요. 왠지 나도 그런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엔 몸이 허
공에 뜬 것 같았어요.]

*
손에 들고 있는 책의 구절들을 자꾸 다시 읽는다.
눈은 문자들을 따라가고 있는데, 머릿속은 어딘가를 맴돌고 있어서
자꾸만 문자를 놓치고, 그래서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어두침침한 방 창 밖으로 살며시 보이는 하늘은 너무 파아래서,
드문 드문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성큼 다가온 계절을 알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인가) 꽁꽁 묶어 묻어둔 것들이 자꾸 꾸물 꾸물 새어나오려는 것 같아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뭔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는데, 진부한 말들만 늘어놓았다.
지난 2월인가, 내가 정말 지독하게도 힘들었을 때 같이 밤버스를 타고 내려가던 날,
계속 질질 짜던 내게 그녀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휴지나 담배를 건네주었는데,
나중에 지나고 나니
그냥 아무 말없이 그러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곁에 있었던 그녀가 참 고맙더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그녀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더듬어보아도 그저 까마득하기만 할 뿐.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대면해야 하는 절대적인 삶의 부분이 있다는 걸 다시 절감하게 되고,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또 조금은 슬픈 채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누구나 한 두번씩은 겪는 일이라 해도, 조금씩은 다른 빛깔과 주름과 기울기를 갖는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섣불리 일반화하지도, 사는게 다 그런거지라고 쉽게 단정짓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도, 그녀를 힘들게 하는 상황과 관계들 속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알 수 없는 사정과 고민과 생각과 아픔들이 있을테고,
거기에 어떤 의미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알 수 없을 그 의미들을 그녀가 찾아내고, 그래서 그게 위로가 되고, 조금의 힘이 되면 좋겠다.

한동안 슬픈 음악 금지였는데,
그래도 계절이 계절이니 하면서 눈물이 쏙쏙 나올 노래들만 골라서 듣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