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다르게 살아보려고 하는 게, 담배를 끊고 참는 것을 뺀다면, 별로 없이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애를 시작했구나...
너는 어떻게 지내니...
그가 다시 연애를 시작했다고 했다. 끝도 없이 눈물이 나고, 가슴이 저렸다.
나 역시 그와 연애를 시작했다가 끝낸 것 뿐인데, 조금 길고 그래서 지리하게 끝났던 연애.
처음부터 특별할 것도, 남들과 다를 것도 없는, 언제고 누군가와 시작했다가 끝낼 수 있는 연애.
바보같이 나는, 그렇게 시작과 끝이 있는 연애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조금씩 그의 자전거가 도서관 옆에 있는지 확인하게 되고,
그와 같이 걷는 것이 편해지고, 그를 보면 웃음이 나고 그런 관계가 서서히 깊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와 헤어졌을 때, '연애가 끝났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서서히 깊어진 그 관계와 마음을 갑자기 막아서야 할지 캄캄했다. 연애가 끝났다는 것이 왜 곧 그와의 전면적인 단절을 의미해야 하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길이 나지 않은 곳으로 억지로 마음을 돌려야 하는데,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너무 낯설어서, 그 낯설음이 서운하고 또 서운해서 마음 깊숙한 곳이 자꾸 아파왔다. 나의 눈물과 슬픔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나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무어라 내 자신에게 뭔가를 설명해 낼 기운도 없었다. 그저, 생각을 멈추거나 마음이 아프도록 내버려두어야 했다. 깊숙이 빨아들이는 담배 연기 정도만 그곳에 가닿는 것 같았다. 아프지만, 지금 이 순간이 내겐 참 소중하다,고 밖에는 달리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오는 토요일 오후, 자동차로 엉킨 골목 어귀에서 친구와 차 마실 곳을 찾다가 수학선생님을 만났다. 너무 오랫만이어서, 너무 반갑고 믿어지지 않아서 가슴이 두근두근, 무릎이 덜덜 떨렸다. 선생님! 선생님! 큰 소리로 두번을 외치고 나서야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왜 하나도 안 늙었어요?" 선생님의 놀란 환한 웃음과, 따스한 손길.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면 늘 나와서 안아주던, 근처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시켜 건네주던, 서점에서 고르고 고른 책들을 재미있을거라며 건네주던 그 손길. 열 일곱이었던 나는 서른 둘이 되고, 서른 살이었던 선생님은 마흔 다섯 살이 되었는데, 마치 그동안의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선생님이 거기 서 계셔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아픈 마음이 벅차오르는. 독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잠시 동안만 아이들에게 산수를 가르치겠다고 했던 서른 살의 선생님이 여전히 아이들과 정석을 붙잡고 씨름하는, 그래서 지치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나이들어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마음 아팠지만.
"우리 혜미는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던져놓던 질문은 언제나 내게 큰 숙제였는데, 그가 준 시집과 인문학 책들은 힘들 때 찾아보는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는데, 내가 커서 뭐가 되면 좋겠다고, 뭘 하면 정말 잘 할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아준 유일한 스승인데, 그 질문의 답이 내게서 조금 명확해질 때 쯤, 선생님은 자신의 오랜 꿈을 접어버렸다. 선생님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들은 모조리 수학 문제집과 정석, 수험서들로 대체되었다. 그가 떠나야 할 곳으로 떠나지 못하고, 너무 많은 잎을 매단 채 이곳에 안주했을 때, 그래서 늘 정신없고, 바쁘기만 한 그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몇 년이나 지났는지 가물가물하다. 나는 그 때의 나로부터 얼마나 떠나왔을까? 나 역시 너무 많은 잎을 매단 채 같은 곳에 머물러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예전처럼 선생님이 이곳에 있어서, 똘망똘망하고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쓰다듬고, 나는 또 개구장이처럼 선생님을 놀리고, 선생님의 접힌 옷깃을 바로세워줄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밖에는. 뭐라 달리...
다시 연애를 시작한 그의 소식에 힘들어하는 나와
우연히 마주친 수학선생님과
아이 둘을 데리고 홀로 떠나온 녀석과
낯선 나라에서 혼자 엉엉 울고 있는 나의 친구 녀석 때문에, 자꾸만 아프다. 정말 아프다.
아픈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아픈건지, 벅찬건지, 아픈 곳이 더 아픈건지 모르겠다.
아픈 마음이 내 몸의 몇 배로 부풀어올라 숨을 쉬기가 힘들다.
이제 내가 알던, 내가 익숙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그와 언젠가 마주친다면
수학 선생님에게 그랬듯 환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프지만, 만나서 반갑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봄비, 옛골목길, 아주 아주 깊숙이 빨아들이고 싶던 담배 한 가치, 산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기억, 관계, 시간, 용기, 그리고 진.심.


댓글을 달아 주세요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숨지말고, 나랑 조곤조곤 술 한잔! 이쁘고 고마운 그대들이 있어서 다행!
난 너의 수학 선생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가슴에 무언가 뭉클.하단다. 왠지 현정 선생님을, 그리고 또 나를 떠올리게 만드는 분이야.
현정 선생님도 그 능력과 머리에도 불구, 결국 가족 곁에 남는 것을 택하신 거나 다름없거든. 아직도 못다한 공부 (음악이론과 음악치료)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계셔.
다만 다른 점은 이미 현정쌤은 그에 대한 마음의 정리를 끝내고 룰루랄라 현재도 행복하시지만, 저 수학 선생님의 가슴속은 아직도 쓸쓸하실 듯해서...가슴이 아프다오.
그리고 독일로 공부하러 가고 싶어하셨다는...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고 계신 모습은, 어쩌면 내가 좀더 용기가 없었다면 같은 길을 걸어갔을지도 몰라서 더 마음이 아프고...
암튼 각설하고.
많이 아파하고 울었으면 걍 깨끗이 잊었음 좋겠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에효. 오빠도 어쩌면,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무심한 부분도 작용하셨겠다만...너의 이런 마음을 알고 더 확실하게 정리해주고 싶어서 굳이 그렇게 써보낸 것이 아닐까..싶기도 해.
가끔 난 그게 속상해. 물론 오빠의 속내를 잘 몰라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겠지만, 오빠보다 못한 부분 하나 없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아 마땅하고. 더 꿋꿋이 잘 지내야할 니가 왜 이렇게 계속 흔들리는지...그러니 오빠보다 훨씬 더 니 마음을 다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빨리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라오.
큼, 흔들리는 건 아니라오. 다만 현재의 감정에 무뎌지지 않고, 충실히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한 친구는 연애를 많이 하면 이런 것들에 익숙해진다고 말했지만... 어쩐지 나는 익숙해지고 싶지가 않네...^^;;;
언니의 현정샘을 볼 때마다 나도 늘 우리 산수선생님(본인은 이렇게 표현)이 생각나서 부러웠지. 지금 다시 자주 만난다면,언니와 현정샘처럼 나도 그렇게 지낼 수 있을텐데... 뭐, 우연이 원한다면!
언니의 간만의 댓글, 고맙...(그동안 왜 그리 소홀했냐는 질책!) ㅋ
하루에도 서너번씩 계속 들온단당. ㅋㅋ
댓글 안 달고 지나가도 내 흔적을 느껴보려무나.
ㅎㅎㅎㅎㅎ
언젠가 기술이 발달하면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만.
^^
엉. 꼭! 느껴보겠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