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4/18 아무도 모른다 2
  2. 2007/09/21 몇 살이십니까? (2)
#1.
여성영화제 이주여성워크숍에 다녀왔다.
예전같으면 나도 객석에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질문을 용기내어 물어보았겠지만,
이제는 우리가 너무나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들으려 한다는 걸 알겠다.
이미 답을 갖고 있는 질문들,
우리는 당신들에 대해서 알만큼 알아요. 이건 이런 거 아닌가요? 왜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않나요?
이미 고단한 현실과 단단한 벽을 알아서 감히 우리 자신들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그런 질문들.
우리도 그리 다르지 않으므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대답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
순진하고도 뻔뻔한 마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 이미 그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 사람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고, 어쩌면 오랫동안 그런 기대와 오만으로 사람들을 만나왔는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남자를 만나 생각과 다른 결혼 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놓을 수 없는 그녀들의 일상 때문에 살짝 눈물이 핑 돌기도.
왜 하나도 다르지 않을까?
내 삶은 나 하기 마련이라는 말이 왜 그녀들에게만 유독 타협과 포기이겠는가?
정도만 다를 뿐, 모두 하나도 다르지 않은걸.
내 삶의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그렇게 자신을 어르고 얼버무리고,
포기하면서 보내는 것들인걸.

#2.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들을 보며 생각난 조카 녀석.
벚꽃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우와, 눈이다" 소리치며 뛰어다니던 4살짜리 꼬맹이는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
나는 그 벚꽃이 다 진 학교 도서관을 여전히 기웃거리고 있는데.
며칠 동안 계속 전화해야지, 목소리 들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전화를 했는데.
"이모, 있잖아, 근데..."로 모든 문장을 시작하는 녀석은
태권도에서 초록띠를 땄고,
달리기에서 4등을 했고,
내가 사준 필통을 떨어뜨려 깨먹었다고.
다음에 만나면 꼭 닌텐도 DS 빌려준단다. 같이 닌텐도에 견출지로 이름도 써서 붙이자고.
지이야기만 실컷 늘어놓는 녀석과의 통화가 위로가 되는 이유는 뭘까?
시무룩해있던 이모가 자기와의 통화로 빙그레 웃음짓게 되었다는 걸 녀석은 알까?

#3.
"맘가는데로 편히 있어. 이런 것도 나이먹는 장점"
따스이 전해진 문자메시지를 받아들고
'나이 먹는 것'에 대해 혹은 나이를 먹을수록/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불명료해지는 것, 명쾌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生이 명료해지지는 않더라도, 윤기는 잃지 말아야 하는데,
나이 먹을수록, 삶은 더 불확실해지고 윤기만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편안해지는 대신, 무뎌지거나, 무절제해지거나, 나와의 끈을 놓아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혹은 그동안 너무 무언가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었던 건 아닌가?

... 58년생 여류시인이 등을 토닥인다.

"누군 저 나이에 안 예뻤나!"
스무 살짜리들을 보며 중년들이 입을 모았다
난,
나는 지금 제일 예쁜 거라고 했다
다들 하하 웃었지만
농담 아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앞날이 훠언한
못생긴 내 청춘이었다.
- 황인숙, '까페 마리안느' <리스본行야간열차>(문학과 지성사, 2007) 중

#4.
그리고....
남산의 꽃과 나무들이 시들기 전에, 도서관과 데이트 코스가 녹슬기 전에
춘자샘이 고운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몇 살이십니까?

논문지도 첫 시간에 지도교수님이 추천해준 책 <나, 너, 우리 :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에 실린 글의 제목.
정작 논문 주제와 어떻게 엮어야 할지는 막막한데, 몇 가지 글들이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단점은 번역이 살짝 부자연스럽다는 것!)
역시, 아무리 부정하려고 애써도,
내 자신 (자의든, 타의든) 30대가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쨌든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변화를 수반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걸 굳이 '나이 듦'이라고 이름 붙이는 대신, (정신적) '생장력'과 '생성'에 따른 변화와 시야라고 해도,
그것이 언제나 반갑고 기쁘기만 한 건 아니다.
가끔은 버겁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끝도 없이 꾸역꾸역 생겨나는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망과 무모한 욕심 때문에 휘청이기도 하고,
두렵고, 서글프기도 하다.

분명한 건 그게 무엇이든 도망치거나 숨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좀더 현명하게, 그리고 좀더 적극적으로 앞날을 만들어가고 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어차피 앞에 펼쳐질 몇 년을 내다보고, 예측하는 일이 막막하고 답답했던 건,
5년 전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으니까.

*
뤼스 이리가라이(박정오 옮김), <나, 너, 우리 :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 (동문선, 1996) 중에서

나의 나이와 우주 시간과의 관계. 내 인생의 일년은 곧 춘하추동에 상당한다. 계절 가운데 하나로 한정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이 일어난다. 날도, 계절도, 해도 서로 닮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의 진행은 단순한 시간의 추가와 혼동
될 수는 없다. 한 그루의 나무를 살펴보게 되면, 반드시 쇠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장에 의해서도 일년에 크기나
나뭇가지의 수 등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은 생장력 이외에 의식을 갖고 있다. 사람은 정
신적으로도 커지며, 성숙할 수 있다. 계절의 힘을 빌려 사람은 그전 해의 생성과 연속하고는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생성을 해마다 실현하고 있는 듯하다. 한 살을 먹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생성의 노정을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도시풍경 가운데 살아간다는 사실은 식물계가 보이는 이 시간개념을 우리들에게 망각시킨다. 도시에서는 하루
스케줄이 계절에 따라 별로 변하지 않는다. 일요일이나 휴가를 제외하고, 도시의 리듬은 일년 내내 똑같다. 나아가
공업화된 제품이나 수입품을 식품으로 사용하는 것도 우리들에게 날이나 계절이나 일년의 시간적 가치를 잊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일년이 365일이나 366일이며, 한 살을 먹는다는 것은 매우 비슷비슷한 시간, 하루,
일년의 되풀이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변화가 없는 되풀이는 권태·피로 및 질적 저하를 가져다준다. 매년의 생일은 하나의 단계를 이 희망없는 생성으로
표시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많든 적든 의미나 연속성이 없는 사실의 극히 추상적인 하나의 집합을 나타낼 것이다.
이들 사실을 푸는 열쇠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개인 가운데에서는 이미 발견되지 않는다. 설령 개인이 사실 이
차적인 기쁨을 찾아낼지라도, 상업 이코노미가 그 일부분을 장악하고, 대개의 경우 사람은 그것을 참아내고 있다.

여성으로서의 내 인생 가운데 정신적 진보를 유지하려면 가장 필요하다고 발견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나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나는 나이다. 이 신체의 정신 혹은 영혼을 생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라. 나는 여성으로의
자기 신체를 꽃피게 하고, 형태나 언어·자기인식·환경과의 관계에서 우주적 및 사회적 균형을 자기 몸에 부여하고,
자기 몸에 어울리지 않는 인위적인 유혹에만 의하지 않는 타자와의 교환방법을 자기 신체에 가르쳐야 다.

- 여성은 처녀와 어머니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인생의 각 단계에서 키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여성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처녀성은 단순히 태어나면서 부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들은 처녀로 태어난다. 그러나 우리들은 또한
처녀가 되어야 하고, 가족이나 문화, 그 밖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들 신체와 정신을 해방해야 한다. 처녀가 된다는 것은,
내 생각으로는 여성에 의한 정신적인 것의 정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 부족한 대로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자기의 공포나 타자의 환영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느끼거나, 쓸모없는 지식이나 재산·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 한겨레 21에서 읽으면 이런 저런 생각
골드미스 혹은 패배한 개의 상처 핥기
반짝거리는 청춘의 거품이 꺼진 뒤 살아남은 사람들, 30대 이상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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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 위로가 되는 것들 중 하나는 이상은의 음악! (젠장, 업로드의 용량 제한으로 대신 이 노래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