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영화제 이주여성워크숍에 다녀왔다.
예전같으면 나도 객석에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질문을 용기내어 물어보았겠지만,
이제는 우리가 너무나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들으려 한다는 걸 알겠다.
이미 답을 갖고 있는 질문들,
우리는 당신들에 대해서 알만큼 알아요. 이건 이런 거 아닌가요? 왜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않나요?
이미 고단한 현실과 단단한 벽을 알아서 감히 우리 자신들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그런 질문들.
우리도 그리 다르지 않으므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대답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
순진하고도 뻔뻔한 마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 이미 그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 사람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고, 어쩌면 오랫동안 그런 기대와 오만으로 사람들을 만나왔는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남자를 만나 생각과 다른 결혼 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놓을 수 없는 그녀들의 일상 때문에 살짝 눈물이 핑 돌기도.
왜 하나도 다르지 않을까?
내 삶은 나 하기 마련이라는 말이 왜 그녀들에게만 유독 타협과 포기이겠는가?
정도만 다를 뿐, 모두 하나도 다르지 않은걸.
내 삶의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그렇게 자신을 어르고 얼버무리고,
포기하면서 보내는 것들인걸.
#2.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들을 보며 생각난 조카 녀석.
벚꽃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우와, 눈이다" 소리치며 뛰어다니던 4살짜리 꼬맹이는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
나는 그 벚꽃이 다 진 학교 도서관을 여전히 기웃거리고 있는데.
며칠 동안 계속 전화해야지, 목소리 들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전화를 했는데.
"이모, 있잖아, 근데..."로 모든 문장을 시작하는 녀석은
태권도에서 초록띠를 땄고,
달리기에서 4등을 했고,
내가 사준 필통을 떨어뜨려 깨먹었다고.
다음에 만나면 꼭 닌텐도 DS 빌려준단다. 같이 닌텐도에 견출지로 이름도 써서 붙이자고.
지이야기만 실컷 늘어놓는 녀석과의 통화가 위로가 되는 이유는 뭘까?
시무룩해있던 이모가 자기와의 통화로 빙그레 웃음짓게 되었다는 걸 녀석은 알까?
#3.
"맘가는데로 편히 있어. 이런 것도 나이먹는 장점"
따스이 전해진 문자메시지를 받아들고
'나이 먹는 것'에 대해 혹은 나이를 먹을수록/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불명료해지는 것, 명쾌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生이 명료해지지는 않더라도, 윤기는 잃지 말아야 하는데,
나이 먹을수록, 삶은 더 불확실해지고 윤기만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편안해지는 대신, 무뎌지거나, 무절제해지거나, 나와의 끈을 놓아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혹은 그동안 너무 무언가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었던 건 아닌가?
... 58년생 여류시인이 등을 토닥인다.
"누군 저 나이에 안 예뻤나!"
스무 살짜리들을 보며 중년들이 입을 모았다
난,
나는 지금 제일 예쁜 거라고 했다
다들 하하 웃었지만
농담 아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앞날이 훠언한
못생긴 내 청춘이었다.
- 황인숙, '까페 마리안느' <리스본行야간열차>(문학과 지성사, 2007) 중
#4.
그리고....
남산의 꽃과 나무들이 시들기 전에, 도서관과 데이트 코스가 녹슬기 전에
춘자샘이 고운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여성영화제 이주여성워크숍에 다녀왔다.
예전같으면 나도 객석에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질문을 용기내어 물어보았겠지만,
이제는 우리가 너무나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들으려 한다는 걸 알겠다.
이미 답을 갖고 있는 질문들,
우리는 당신들에 대해서 알만큼 알아요. 이건 이런 거 아닌가요? 왜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않나요?
이미 고단한 현실과 단단한 벽을 알아서 감히 우리 자신들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그런 질문들.
우리도 그리 다르지 않으므로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대답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
순진하고도 뻔뻔한 마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 이미 그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 사람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고, 어쩌면 오랫동안 그런 기대와 오만으로 사람들을 만나왔는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남자를 만나 생각과 다른 결혼 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놓을 수 없는 그녀들의 일상 때문에 살짝 눈물이 핑 돌기도.
왜 하나도 다르지 않을까?
내 삶은 나 하기 마련이라는 말이 왜 그녀들에게만 유독 타협과 포기이겠는가?
정도만 다를 뿐, 모두 하나도 다르지 않은걸.
내 삶의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그렇게 자신을 어르고 얼버무리고,
포기하면서 보내는 것들인걸.
#2.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들을 보며 생각난 조카 녀석.
벚꽃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우와, 눈이다" 소리치며 뛰어다니던 4살짜리 꼬맹이는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
나는 그 벚꽃이 다 진 학교 도서관을 여전히 기웃거리고 있는데.
며칠 동안 계속 전화해야지, 목소리 들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전화를 했는데.
"이모, 있잖아, 근데..."로 모든 문장을 시작하는 녀석은
태권도에서 초록띠를 땄고,
달리기에서 4등을 했고,
내가 사준 필통을 떨어뜨려 깨먹었다고.
다음에 만나면 꼭 닌텐도 DS 빌려준단다. 같이 닌텐도에 견출지로 이름도 써서 붙이자고.
지이야기만 실컷 늘어놓는 녀석과의 통화가 위로가 되는 이유는 뭘까?
시무룩해있던 이모가 자기와의 통화로 빙그레 웃음짓게 되었다는 걸 녀석은 알까?
#3.
"맘가는데로 편히 있어. 이런 것도 나이먹는 장점"
따스이 전해진 문자메시지를 받아들고
'나이 먹는 것'에 대해 혹은 나이를 먹을수록/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불명료해지는 것, 명쾌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生이 명료해지지는 않더라도, 윤기는 잃지 말아야 하는데,
나이 먹을수록, 삶은 더 불확실해지고 윤기만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편안해지는 대신, 무뎌지거나, 무절제해지거나, 나와의 끈을 놓아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혹은 그동안 너무 무언가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었던 건 아닌가?
... 58년생 여류시인이 등을 토닥인다.
"누군 저 나이에 안 예뻤나!"
스무 살짜리들을 보며 중년들이 입을 모았다
난,
나는 지금 제일 예쁜 거라고 했다
다들 하하 웃었지만
농담 아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앞날이 훠언한
못생긴 내 청춘이었다.
- 황인숙, '까페 마리안느' <리스본行야간열차>(문학과 지성사, 2007) 중
#4.
그리고....
남산의 꽃과 나무들이 시들기 전에, 도서관과 데이트 코스가 녹슬기 전에
춘자샘이 고운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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