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7/25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5)
  2. 2007/10/27 가을의 편지
   
"하지만, 변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거야."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흘러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논문을 마쳤다. 정말 쪽팔리고, 부끄러운 논문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안 내놓고 꽁꽁 묻어두지는 않기로 했다. 썩 감격스러운 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논문을 쓸 수 있도록 용기와 지지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약소한 러브레터를 쓰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묵직했다. 그리고 논문이나 감사의 글을 보낼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해준 이들과 공부를 시작하게 해준 이들에게도 소리 없이 감사의 인사를.
이렇게 6년 반을 끌어온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더불어 학교 생활과 함께 시작되었던 그와의 인연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보다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무언가가
며칠 전 폭우가 쏟아지는 길 위의 버스 안에서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여전히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이상한 명제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뭐랄까, 살면서 때로는 나도 어쩌지 못할 어떤 순간들이 있다는 걸,
가끔은 그저 담담히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마치 누군가 내게 친절히 알려주는 것처럼, 가슴으로 전해주는 것처럼
문득 어떤 순간에 가슴에 전해졌다.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래서 이제 조금은 놓아보낼 수도 있겠구나.

어쨌거나, 그러니까, 뭔가 삶의 한 단락을 접어보낸 그런 알싸한 기분.
그리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모두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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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는 혜정이에게!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사람 모여 사는 곳 큰 나무는
모두 상처가 있었다.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오후내 저녁내 몸 속에서 진 흘러나와
찐득찐득 그곳을 덮어도 덮어도
아직 채 감싸지 못하고
쑤시는구나.
가만, 내 아들 나이 또래 후배 시인 랭보와 만나
잠시 말 나눠보자.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 황동규, <몰운대行> 중에서



가을의 편지

珈琲時光 2007/10/27 22:27
가을의 편지

황동규

우리는 정신없이 이어 살았다.
생활의 등과 가슴을 수돗물에 풀고
버스에 기어오르고, 종점에 가면
어느덧 열매 거둔 과목의 폭이 지워지고
미물들의 울음 소리 들린다.

잎지는 나무의 품에 다가가서
손을 들어 없는 잎을 어루만진다.
갈 것은 가는구나.
가만히 있는 것도 가는구나.
마음의 앙금도 가는구나.

면도를 하고 약속 시간에 대고
막차를 타고 밤늦게 돌아온다.
밤 세수를 하고 거울 속에서
부서진 얼굴을 만지다 웃는다.
한번은 문빗장을 열어놓고 자볼까?

- 황동규 시전집 1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