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珈琲時光 2008/11/29 01:41

모처럼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 점심을 한참 넘겨서까지 잤고 꿈을 꾸었다.
늦게까지 잠을 잔 덕에 꿈을 꾸었으나, 꿈 때문에 이불 속에서 한참을 더 밍기적거렸다.

버스를 탔다.
큰 도로가 아닌 작은 동네와 좁은 골목들, 오래된 집들의 마당과 집 안을 거쳐가는 이상한 버스.
마당에 널어말린 고추나 나물들 옆으로 지나가고, 장독대를 스쳐가고,
심지어는 마루와 부엌, 방들을 지나치는.
버스가 지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문을 열어야 하는.
방문을 열고, 마루의 커다랑 창을 열고.
문이 너무 작아서, 통로가 너무 비좁아서 버스가 들어가지 않으면 승객들이 모두 내려야한다. 그럼 버스 기사 아저씨가 버스를 종이처럼 착착 접어 창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난 후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탄다.
어디에 앉으면 좋을까, 다시 올라탈 때마다 빈 자리들 앞에서 갈등한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직행버스를 탈 걸, 하는 생각만 한다.
몇 개의 문을 열고 닫고 열고 닫고서야 어딘가에 닿았으나, 그곳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바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균형있게 느껴졌던 생활이 미세한 흔들림에 휘청인다.
아마도 뭔가를 해야 하고,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겠지만
한번 휘청이기 시작하니 다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여유' 혹은 '고요함'이라고 느껴지던 어떤 균형이 깨지는 순간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는걸까.

연대니 발굴이니 네트워크 구축이니 지속성이니 마음에 없는 말들 혹은 마음이 닿지 않는 말들로 가득찬 계획서와 지원신청서를 잔뜩 쓰고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음이 담긴 언어를 생각해내는 것이 쉽지도 않고, 그 언어들을 담아야 할 그릇이 워낙에 정해져 있는 것들이기도 하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시간이나 한계들을 핑계로 삼지는 않아야 하는데.

녀석에게 부치기로 한 편지는 3주가 넘게 가방 안쪽에 들어있고,
생일 축하 카드를 쓰겠다고 한 달 전에 사놓은 편지지는 아직 포장지도 뜯지 않은 상태. 
이렇게 한 달이 간다. 또 한 해가 간다.

* Elephants / Rachael Yamagata
요즘 자주 듣는 노래. 가사가 인상적. 물론 번역된.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김희영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0년 8월 26일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선물받았다고, 표지를 넘기면 쓰여져 있다.

며칠 전, 맥주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김샘이 요즘 <사랑의 단상>을 다시 읽고 있다고 했다.
(바르트의 말을 빌린) 김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으므로 -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하루종일 비가 오던 눅눅하고 선명하게 푸르렀던 휴일,
지하 창고에 내려가 먼지 가득 뒤집어 쓴 책더미들 속에서 조심스레 <사랑의 단상>을 찾아냈다.
오래된 책갈피, 군데 군데 모서리가 접혀있는 책장들, 2000년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고, 책장을 접었을까?
김샘이 이야기하려고 했던 부분이 아마도 여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지금 읽어봐도 잘 모르겠는 이 구절들이 그 때는 어떤 의미로 내게 다가왔었는지 희미하게 표시가 되어 있다.

...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
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
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그 사람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음, 그렇다면 <봄날은 간다>에서 왜 철저하게 이영애의 자리가 비어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처럼 일 얘기 제쳐두고 사는 이야기들, 힘들게 하는 일들을 나눴는데, 김샘의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읽어야지, 아니 새로 읽어야지 마음먹고 읽은 서문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사랑에 대한 구절이 아니라, "참고문헌"에 대한 구절.

이런 사랑의 주체를 구성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출처의 조각들을 가지고 조립하였다. 어떤 것은 괴
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규칙적인 책읽기에서 온 것이고, 또 어떤 것은 꾸준한 책읽기, 우
연한 기회에 행해진 책읽기에서 온 것이다. 또 몇몇은 친구들과의 대화, 내 스스로의 삶에서 온 것도
있다.
책과 친구들에게서 빌린 것은 때로 이 텍스트의 여백에다 책 제목과 친구들 이름의 이니셜을 씀으로써
그 출처를 밝히고 있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게 주어진 주석은 권위적인 것이 아니라 우정어린
것이다. 나는 내 글을 보증하고자 인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나가는 길에 나를 매혹시키고 설득했던
혹은 한 순간이나마 이해한다는(또는 이해된다는?) 즐거움을 주었던 것들을 하나의 인사로서 상기하려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읽고 들은 것에 대한 이런 회상은 자주 불확실하고도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런저런 것이 읽혀지고 말해지고 들은 장소들의 기억(책이나 만남) 외에는 다른 그 무엇
도 아닌 담론에는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필자가 여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의 '지식'을 빌
려준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지식의 올바른 사용과는 무관한, 자신의 순진무구한 상상적인 것
만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 '기억'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고이 묻어두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잊혀지는 것이라면 문득 문득 그토록 선명하게 어떤 순간들이 살아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기억들을 끈으로 꽁꽁 묶어 마음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고, 흙과 먼지로 그것들이 눈에 띄지 않도록 잘 덮어두었다.
혹 갑자기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아가거나, 또는 알 수 없는 동요로 쌓아둔 것들이 흔들려 기억의 일부가 제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면,
그럴 땐 눈을 질끈 감아버리거나, 먼 허공으로 시선을 잽싸게 돌려야 한다.
그러니 바람이 불지 않도록, 심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당분간은 살금살금 걸어야.
더 시간이 흐르면 어딘에 그 기억들을 묻어두었는지, 어떤 것들로 기억을 덮어버렸는지를 잊게 되겠지.
그러니까 결코 그 기억 자체를 잊어버리는 건 아닐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결국, 어떻든간에 누군가에 대한 혹은 어떤 시간에 대한 마음의 부분이 조금씩 작아진다는 건 적절한 표현이다.